제3회 SDA의사회 Family Festival을 안내드립니다. (9/14-15)

9월 14일부터 15일까지 양평영어마을에서 SDA 의사회 가족 축제가 열립니다.

SMA 회원들도 예비 의사로써 축제에 초청되었어요 ^ㅡ^

참가비도 무료입니다 ㅋㅋ

 

SMA회원들이 약간의 해야할 일이 있습니다.

주니어 의료선교인 비전프로그램을 맡았는데요

엄청나게 큰 프로그램은 아니고 행사에 참여하는 중,고등학생들에게 의료선교인을 소개하고

약간의 입시상담을 겸한 그런 프로그램이 될 것 같습니다.

 

9월 10까지 연락을 주셔야 숙소와 식사등의 준비가 편할것 같아요

프로그램을 맡을 인원 자원은 저에게 개인적으로 해주세요 🙂 (공일공-구칠구육-팔이오이)

 

아래는 안내문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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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SDA의사회 Family Festival 및 정기총회

 

전국에 계신 SDA의사회 회원과 가족 여러분!

유난히도 더웠던 2012년 여름도 한풀 꺽이는 듯

조석으로 시원한 바람이 느껴지는 계절입니다.

각자 계신 곳에서 병원 경영과 교회를 섬기느라 바쁘신

회원 여러분께 깊은 감사와 경의를 표하는 바입니다.

시원한 바람이 부는 초가을에 SDA 의사회 회원 여러분과 가족들이

행복한 추억을 만들 수 있는 가족 나들이를 마련하였습니다.

올해로 3회째 맞이하는 SDA의사회 Family Festival

회원 여러분과 가족들을 정중히 초대 합니다.

온 가족이 함께 오셔서 친교를 나누며 재림신앙을 가진 의료인으로 살아 가는데

필요한 영적 에너지를 충전하는 소중한 시간이 되었으면 합니다.

SDA의사회 회장 유 제성

 

*일시 : 2012914() 저녁 7915() 오후 4.

( 등록은 14() 630분부터 진행합니다.)

 

*장소 : 양평영어마을 ( 경기도 양평군 용문면 다문리 산 25 )

T: 031-770-1300 (야간); 031-770-1390

 

*초청 강사 : 이 재룡 목사 ( 북아태지회 지회장 ) 주제: “ 행복한 재림의사

 

*참가비 : 없음. ( 등록시 연회비 12만을 납부해주시거나 사전입금 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

연회비 입금 계좌 : 우리은행 . 1006-701-357952 (SDA의사회)

 

*드레스코드 : 안식일 복장 및 가벼운 산행 복장.

 

# 안식일 오후 프로그램 안내 (오후 2-4)

* 영어마을 주변 용문산 산행 가족과 함께 편한 복장으로 약 2시간 정도 가벼운 산행후 경품을 추첨하는 행사를 갖도록 할 예정입니다. (산행은 우천시 취소 될 수 있습니다.) 

 

 * 주니어 의료선교인 비전 프로그램 

대상: 청소년 ( 1-2 )

의대 및 치대생 모임인 SMA와 함께 의료선교인에 대한 비전을 나눕니다.

 

사전 등록은 홈페이지 www.drsda.com 열린광장 Q&A란에 댓글이나

총무이사, 홍보이사에게 직접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사전 등록시 함께 숙박하고자 하는 회원이 있으시면 같은 동으로 배정해 주도록 요청해 주세요.

가능하면 같은 동으로 배정하도록 하겠습니다.

 

문의처: 총무이사 조익환 (010-9122-6532)

홍보이사 정은호 (010-8706-7527)

진료중에 전화를 받지 못할 경우 문자를 남겨주시면 전화 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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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이 되어 쓰는 후기4 – 봉사 둘째날

전 내일부터 일을 시작해서….. 그 이후 내용은 잘쓸 수 있을까 모르겠네요. 하지만!! 이게 젤 많이 쓴(진도로만 보면.. 봉사날까지 후기쓴게 거의 처음??ㅋㅋ) 후기라는 거~~
이해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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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봉사 둘째 날

피곤함 속에 시작한 둘째날.
둘째날의 아침 예배는 현지 통역을 맡은 청년이 어떻게 하나님을 믿게 되었는 지에 대해 우리에게 말씀해 주었다. 라오스에 가기 전부터 라오스는 사회주의의 나라이며 90프로가 불교, 나머지에서도 아주 소수가 기독교임을 알고는 있었지만… 라오스 나라 속에서 하나님을 믿기가 그렇게 어려운 일인줄은 몰랐다. 그리고 그 현실은 봉사 마지막날 간접적으로 체험하게 되었다.. 암튼 기독교인 특히 재림교인으로서 라오스에서 믿음을 지키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알수 있는 날이었다. 그리고…… 말하는 현지통역보다 전해주는 서준이의 리액션이 빵빵 먹히면서……. 민서준신학대보내기 캠페인이 벌어질뻔 했다.ㅋㅋㅋㅋ 

반쯤 안개와 반쯤 구름낀 야외식당에서의 오카리나 연주는….. 눈으로 음식을 보고 귀로 연주를 듣고 입으로 먹는 사람들에게는 아주 분위기있게 들릴 연주였지만…… 밥 다먹었다고 카메라를 들고 동영상으로 촬영한 나에게는 갈수록 이글어지는 하라오빠의 표정에…..  음.. 오빠 미안해 ㅋㅋㅋ  혹시 그 연주가 다시금 듣고 싶은 사람들은 연락주세요 ㅋㅋ

암튼 살짝 내리는 비를 맞고 우리는 병원으로 출발했다.

이날은 아침부터 강기훈 선생님 방문진료 나가시고 현정언니는 세미나를 가는 바람에 나도 진료를 하게 되었다. 이날 부터 난 쭉 ㅜㅜ 진료를 하게 되었다. 아~ 진료를 안하던 나날들이여ㅜㅜ 환자들은 다양한 근육통, 위염, 어지럼등등의 증상을 호소했고. 내가 줄 수 있는건 물리치료, 진통제, 소화제/위보호제 밖에 없었다. 현정언니는 손잡고 기도한다는데….. 나는 부끄럽지만 잘 낯선 사람을 위해 기도한다는 것… 정말 쉽게 되지 않는 일이다, 종교의 자유가 보장되는 한국에서 조차도…. 그래서 나는 미소 하나만.. 그들에게 줄 수 밖에 없었다.

그 전 봉사대…. 가장 기억에 남는 선생님 (그렇다고 다른 선생님들이 기억에 안 남는 건 아니예요~ 사랑해요 선생님들^^ )중 하나이신 진석준 선생님은 항상 웃는 얼굴이시기도 하지만, 가장 힘든 시간인 오후 4시에도 환자를 향해 환하게 웃어주셨던… 그 모습이 기억나기에 나는 처음 환자를 대할 때, 미소로 대했다. 

현정언니가 세미나를 떠나고 난뒤 잠시 조용했던 진료장이 잠시 부산해지더니 갑자기 나를 부른다. 산모가 왔단다….. 나보고 어쩌라고;;; 난 산부인과 인턴도 안 돈 내가….. 다행히 조산사가 있었다. 난 어리버리 하고 있는 사이 김영선 간호사님과 조산사가 분주히 움직이고 계시기에… 조용히 물러나와 진료를 보았다. 근데 아무리 봐도 양수 색이 안 좋아서….. 뭔가 불안했는데 어떤 항생제를 주어야 할지.. 어떻게 해야할 지 몰라 현정언니만 기다리고 있었다.

그리고 태어난 아기… 그 유명한 종이컵 사건이 일어나게 되었고(응?) 이건 그날 저녁까지 계속 회자되었다… 그리고 현정언니가 와서 그 산모는 마무리 되었다.. 

이날 오후에도 산모가 왔다. 이전 봉사대에서  이런 적 없었는데 산부인과 의사왔다는 소리에 왔자보다. 하지만 결론적으로 두 아이 모두 현정언니 없을 때 애를 놓았다는거… ㅎㅎ 그 오후에 온 산모는 현정언니가 몇차례 갔지만 결국 새벽에 애를 놓았다.

다사다난 했던 하루가 가고.. 저녁시간.
그날은 박병원선생님께서 강의를 하셨다. 그 첫인사가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 ‘안녕하세요. 전 하나님을 믿는 사람입니다.’라고 시작한 첫 인사에 우리 모두가 감명을 받았다. 박병원 선생님께서 어떻게 하나님을 믿게 되었는지, 어떻게 변했는지, 그리고 라오스에서 어떤일을 하셨는지, 책에서는 간단하게 나온 탈라세미아에 대한 이론적인 내용까지.. 

그리고 이어진 소그룹..
많이 아쉽긴 한데 심화반이었던 우리반은 소그룹사이에 차이가 많이 벌어진다기에 멤버를 조금 바꾸어 예배를 드렸다, 하지만 그래도 우린 우수반 ㅋㅋㅋㅋㅋ 늦은 시간에 시작해 다들 감기는 눈 부릅뜨며 예배를 드리고 각자 방으로 헤어졌다. 어김없이 막히는 샤워실과의 사투를 벌이며 그날 하루를 마감했다.

<후기4 월요일 > 이 사람들이 대체 누구인가?

프롤로그

 

나는 이제 피가 뿜어져 나오는 드라마의 수술 장면을 예전 보다는 길게 지켜 볼 수 있다. 그리고 의료에 관련된 드라마도 넘 재미있다. 가장 큰 변화는 피가 더 이상 공포 스러운것이 아닌 것을 알게 된 것이다. 그리고 좀 더 유식해 졌다는거…. 

‘골든 타임’의 심전도 장면을 보면서 이 사람들이 제대로 촬영을 했나.. 검사하고 있는 나를 보면서 웃었다. 하하하..^^

 

진료 시작 월요일.

 

월요일의 반찬을 담당한 친구들이 아침 식사를 도와 주었다. 만화에서 금방 튀어나올 것만 같은 만화 주인공… 을 닮은 한 학생이ㅋㅋ 어머님이 직접 요리해 주신 반찬의 국물이 새었다서 두통의 반찬을 가져 왔다. 고맙기도 하고, 미안하기도 하고,…… 그러나 그 반찬이 없었다면 우린 슬펐을것이니, 그냥 괜찮냐라는 말로 ‘급’ 마무리 했다.ㅋㅋ

  

전용 오픈카를 타고 병원으로 모였다.

도착하자 기도를 위해 우리는 병동으로 모였다.  하지만 공산주의 국가이기에 조용히 방안에서 문을 닫고 기도했다. 마음이 좀 이상했다. ‘문을 닫고 기도 하다’…… 마음이 갑자기 간절해 졌다. 우리가 만나는 사람들에게 보일 수 있는 것은 오직 우리의 선한 행실 인데 우리의 이기적이고 못된 자아가 불평 불만을 하게 하는 것은 아닌지 슬그머니 겁이 났다.

 

치과에서의 스켈링 보조

짧은 환영식?이 끝나고 치과로 모였다.  상훈이는 아주 명확하고도, 체계적으로 우리가 해야 할 소독에 대한 설명을 해 주었다. 기본 밥상?을 차리고, 소독을 3단계에 거쳐서 하고, 그리고 마취제 주사 셋팅과, 스켈링 팁?을 끼우는 방법 그리고 락스랑 또 하나… 식염수?? (기억이 가물 가물 ㅠㅠㅠ)을 준비해야 하는 것도 알려 주었다. 최근 몇 년간 그렇게 집중해 보기는 처음이였다. 드디어 시작.

 

상훈이의 스켈링 보조를 하게 되었다. 나의 역활은 셕션을 하면서 라이트를 비춘다…

이렇게 간단하면서도 간결한 문장이 실제로는 온몸의 신경과 정신을 집중하지 않으면 할 수 없는 일임을 시작할땐 상상도 못했다.

 

첫 환자는 어린 여학생이였다. 나 처럼 겁이 났는지 쉬이 입을 벌리지 않아서 통역과 우리가 ‘아’를 한 백번 한 것 같다…. 드디어 아이가 입을 별렸다. 상훈이는 실제로는 어땠는지 모르겠지만 평소와 같은 신중하고도 차분한 모습으로 시작했다. 하지만

셕션을 영어 단어로 배운 나…….. 제대로 될 리가 없었다. 거기에 공간 감각력이라고는 없고, 순발력도 없는 내가 상훈이가 보는 공간이 어디인지 도대체가 알 수 가 없었다. 점잖은 목소리로 상훈이가 ‘누나 거기가 아니라 여기요’ 하고 여러번 알려줬다는 것 말고는 첫 환자에 대한 기억이 없다. 두번째 환자도 나는 셕션 팁을 어디에 둬야 하는지 몰라 상훈이를 쳐다 보기 일쑤였고, 나의 라이트는 환자의 치아가 아닌 엉뚱한 상훈이의 손등을 비추기를 여러번 했다. 거기에 피까지…… 셕션팁을 신경쓰니 라이트가 엉뚱한데로 가고, 라이트를 보잖이 상훈이가 뭘 보는지 모르겠고..ㅠㅠ 그렇게 두번째 환자가 끝났다. 땀으로 범벅이 되었다. 땀이 비오듯이 온다는 말은 이를 두고 하는 말이구나… 문자를 직접 몸으로 체험하는 순간이였다. 마음에서 기도가 절로 나왔다.  ‘하나님 셕션과 라이트 두가지 모두를 잘하기는 힘들것 같으니 하나만이라도 잘하게 도와주세요.’ 숙였던 허리를 펴고 주변을 살펴 보았다. 모두들 환자를 보느라 정신이 없었다. 옆에 누가 있었는지 기억이 않나지만.. 아마 소은이였을 것이다. 너무나 진지하고도 열중하고 있는 모습에 용기가 생겼다. 나 뿐만 아니라 여기에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힘든 일이구나… 환자에게도 낯선 사람, 낯선 치과 기구로 치료를 받는 것이….. 심지어 의사 선생님들도 불편한 의자와, 배드때문에….. 이 모든 것들이 모두에게 힘들지만, 모두가 최선을 다하고 자신의 열정을 바치고 있음을  순간 느꼈다.

 

세번째 환자가 왔다. 정신을 똑바로 차리고 차분히 상훈이가 가르쳐 주는 데로 보이지 않는 치아는 라이트로 미러를 비추고 시야가 확보되는 부분은 라이트로 직접, 그리고 셕션은 방해가 되지 않게 반대쪽으로…. 상훈이가 ‘누나 이제 잘하는데요?’ 라는 짧고도 굵직한 멘트를 날렸다. 자신감이 좀 붙었다. 나는 오로지 라이트가 잘 비취지는 것에만 집중을 했다. 그런데 갑자기 누군가 나나를 찾았다. 식사가 왔다며…

 

그때의 기분이란 순간 ‘다행이다’ 이랬다…. ㅋㅋ.  내가 하던 역활을 잠시 다른 사람에게 맡기고, 배달된 식사를 챙기러 갔다. 세팅을 하니, 12시쯤 식구들이 모였다. 맛있게 밥을 먹고 오후가 되자, 나는 다형이와 함께 소독을 하게 되었다.

소독은 스켈링 어시스트보다는 수월했다. 한번에 하나씩 차근차근 하면 되었기 때문에… 그러나 개인적으로 봉사대 최대의 위기를 맡게 되었다.

 

‘악’나즈막한 비명이 나오다 목에 걸렸다. 피가 범벅이 된 발치용 기구들과 치아들이 트레이에 담겨져 왔다. 나도 모르게 속에 메슥거웠다. 나는 액션영화에서 나오는 피 튀기는 장면을 못본다. 때문에 영화관에서 중간에 나오기도 여러번………이유는 잘 알 수 없으나, 아마도 어렸을적 기억때문일 것이다.  내가 9살 때 동생이 큰  차 사고를 당했다. 6살이던 어린 동생의 피가 흥건히 적신 아스팔트를 보면서 인간의 죽음이 무엇인지조차 가늠할 수 없었던 나. 하여 나에게 피는 공포의 대상이자, 나를 무력하게 하는 대상이였다.  그래서였는지, 트레이에 피범벅이 된 기구들을 보자 마자 나도 모르게 어찌할 바를 모르고 얼굴이 찡그려졌다. 얼굴을 돌리니 마스크 너머로 앞에 기다리고 있는 라오스 사람들을 보았다.

 

순간 정신이 번쩍 들었다. 나는 이곳에 개인적인 취향대로 행동하기 위해 온것이 아니다. 나는 이곳에 내가 하고 싶은 일만 하려고 온것이 아니다. 이곳에서 맡고 있는 역활이 나와 맞지 않는다고 얼굴을 찡그리고 다른 이들을 불편하게 하고 있는 내가 너무나 부끄러웠다. 하지만 생리적인 구토 현상을 어떻게 할 것인가…. 조용히 나왔다. 숨을 돌리고 묵묵히 일을 하던 다형이에게 발치 트레이를 맡겼다. 고마워 다형아… ^^ ㅋㅋ 너 아니였음 누나 그때 좌절 했을 것이다. ㅋㅋ 그 뒤로도 피범벅 발치 트레이가 왔지만 다형이가 다 처리해 줬다는 …. (하지만 이 일이 있고 나서 부터는 피가 덜 무서워 졌다. 그래서 지금은 액션 드라마도 쬐끔 잘보게 되었다는)

 

정리 시간이 되었다. 나는 마지막으로 침처럼 생겼지만 솔처럼 생기고 다양한 색깔의 기둥을 가지고 있으면서 번호가 있는… 뭔지를 모르니까. 하여간 손바닥 만한 통에 들어있는 작은 녀석들을 정리하고 있었다. 순간 점심때 먹은 반찬이 생각나서 그 통과 작은 녀석들을 그대로 두고 옆방을 다녔왔다.  그런데 갑자기 ‘탁’ 무엇인가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돌아와 보니 내가 두고온 그 통에 있던 작은 녀석들이 우수수 땅으로 떨어졌다…… 이런……. 나도 모르게 그 통의 주인이라고 생각되어지는 한 분의 얼굴을 살폈다….. 만약 내가 주인이라면 완전…. 화가 났을 것 같았다. 잘은 모르지만 그 물건은 치과 기 구중 중요한 기구인것 같고, 개인 물건인 데다가 땅바닥에 한개도 아니고 몽땅 떨어지다니….뒷 골이 땡길만한 일이였다. 그런데 그 의사 선생님은 그저 웃으시면서 ‘큰일은 큰일이다 (웃음)  잘 찾아서 주워담고, *** (잘모름)에 집어넣어서 소독해라’ 하시면 시크하게 나가셨다… 난 넘 쫄아서 죄송하다고 한 마디도 못하고 대신 현장에 있던 같이 있던 친구가 미안해 하며 치웠다…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이런 일은 정말 엄청난 일이였다는거….ㅠㅠㅠ 이자리를 빌려 그렇게 시크하게 나가주신 선생님 감사해요 그리고 죄송해요. ^^*.

 

 

하루종일 느낀 것이지만, 치과에 ‘치’도 모르는 일반인 우리가 도와주는 것이 그리 탐탁지만은 않았을 것이다. 거기다 아무리 치대라고는 하나 학생들이 도와주는 것이 그리 완벽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스나퍼? 하여간 그것이 무엇인지 되물어보는 나같이 효율없는 봉사자에게 차분히 설명해 줄 수 있고, 기구가 셋팅이 않되었어도 싫은 기색 없이 잘 기다릴 수 있고, 찾고 있는 기구를 못 찾는 우리를 두고, 직접  와서 다른 기구로 바꾸어 가는 치과 의사 선생님이 과연 몇이나 될까?

 

거기에 하루 종일 말이 안통하는 환자를 상대하고, 하루 종일 서서 의사 선생님 어시스트 하면서, 땀을 비오듯이 쏟아내도 밝게 웃는 임 **군. 머리에는 라이트를 한 손에는 셕션을 다른 한 손에는 스켈링 팁을 쥐고 일인 3역을 하는  스마인들을 만드는 원동력이 무엇일까?

 

하루가 끝나가고 침낭에 누었다. 나와 함께 있는 이 사람들의 정체가 궁금해졌다.

과연 이 일주일의 휴가를 반납하고, 하루종일 이 더운 곳에서 고생을 자처하는

나와 함께한 이들…. 이들이 대체 누구일까????

 

 

너무나 인상적이였던 하루는 나에게 큰 질문을 남기며 끝이 나고 있었다.

 

 

[후기] 천천히 올려봅니다. ㅎ 후기 첫번째(prologue)

prologue(봉사대 가기 전 이야기)

 

이라는 걸 참 오랜만에 써보는 듯하다.

내가 썼던 마지막 글이라면 의학전문대학원에 들어오기 위한 ‘자기소개서’였고 그때 그 자기소개서를 제외한 다른 글을 썼던 기억은 적어도 최근 몇 년은 확실히 없다.

글을 좋아하는 사람도 아니고 그렇다고 자기 일에 대해 소상히 기록에 남기거나 하는 소소한 즐거움을 모르는 그냥 재미없게 사는 사람이기 때문에 추억들을 기록에 남겨 본 적도 거의 없는 것 같다.

후기를 쓰기 전부터 주저리주저리 내 이야기를 쓰는 걸 보니 확실히 글 쓰는 것에 자신이 없나보다사진기록과 재미있는 문체와 감동적인 이야기들로 이루어진 훌륭한 라오스 봉사대 후기들 사이를 비집고 비루한 글을 올리려니 부끄러워서 이런 쓸데없는 말들을 쓰고 있는 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나는 SMA의 신입생!! 귀여운(?) 새내기로서 봉사대 후기 업로드라는 막중한 임무를 띠고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다(하지만 역시 많이 늦었다. 글 쓰는게 참어렵다).

 

 

여러번 많은 사람에게 말해서 이제 또 말하기 조금 부끄럽지만 SMA를 좋아한다. 그냥 좋다. 이 모임이내가 소속되기 전부터 좋았고, 소속될 수 있어서 좋았고, 앞으로는 더 좋아할 것 같다. 그래서 매년 SMA에서 하고 있는 하기 봉사대는 무조건 참석하리라고 애초부터 마음을 단단히 먹고 있었다. 봉사하러 가는 나라가 어디든, 어떤 사람들이 가든지 상관없이 갈 생각이었다. 3월 말쯤 봉사대 신청을 하라는 회장 윤석이의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신청을 했고 바로 입금했다. 봉사대 가기 얼마 전에 상훈이가 나에게 비행기 값이 입금 되지 않았다는 연락을 한 적이 있다. 그 연락을 받았을 때 돈이 문제가 아니라 비행기 예약이 안돼서 봉사대 못 가면 어쩌지 하는 걱정이 먼저 들었다. 나중에 상훈이가 알아보니 입금을 너무 빨리해서 사랑나눔 의사회에서 체크를 못했다고 했다. 41일부터 입금기록을 아무리 살펴봐도 없었는데 나는 3월에 입금을 해 버렸더라고

가고 싶은 마음이 너무 앞서서 오바했나보다….

 

 

봉사대 기간이 721일 부터로 잡혔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아이고난 방학이 20일 부턴데사는 곳도 경상남도 양산 시골인데 봉사대 준비는 어떻게 해야 할까 걱정이 들었다. 하지만 걱정은 걱정일 뿐악명 높은 1학년 1학기 생활을 하고 있는 나는 내 앞가림도 제대로 못하고 허둥지둥 학교생활과 시험에만 매달려 있었다. 그렇게 시간을 보내고 있는데 윤석이가 전화를 하더니 무려 봉사대 신덕부장 맡으란다. 두둥! 아니 이게 왠 날벼락! 늙은 신입생이라고 처음가보는 봉사대에 신덕부장이라니그때 왜 한다고 해가지고는 참부담이었다. 윤석이가 교재는 이번에 어떤 선생님이 해주신다고 한다.

음 그래 ? SMA는 교재도 만들어서 가는구나….

난 몰랐다. 신덕부장이 무슨 일을 하는 건지 알려주지 않은체 그냥 할 수 있겠냐고 물었던건 윤석이가 참 똑똑했던 것 같다. 무서운 녀석그래도 선생님이 도와주신다니 천만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윤석이가 책을 도와주실 선생님은 나의 고등학교 후배일거라고 했고 적극적으로 도와주신다고 했으니 편안한 마음으로 전화를 드렸다.

 첫 통화 후, ~ .... 3년이나 후배라는데 .... 나의 기말고사 일정을 들은 선생님은 .... 교재 만들 시간은 전~혀 없겠다며…(지금은 선생님과 나름(?) 친하니 오해 없으시길 ) 그러곤 교재 내용이 담긴 설교문을 보낼테니 읽어보고 피드백을 달라고 하셨다. 메일을 받아서 9~10개 정도 되는 한글파일 중 처음 열어본 설교문은 A4 40페이지!!!

,...……..길고ㅎㅎㅎ 나름 열심히 시험 공부하는 틈틈이 주말을 이용해 대충대충 정독하며 빨리빨리 심혈을 기울여 시험보기 직전 족보(학명:야마) 보듯이 읽어서 몇몇 코멘트를 드리기는 했으나 사실 이러 저러하여 결국 선생님은 혼자서 모든 소그룹 교재를 다 만들어 주셨다. 무능한 신덕부장의 한계

 

 

라오스 출국 일주일 전 서울에서 헌신회 및 사전 교육을 위한 모임이 있었다. 시험도 끝내지 못한 ‘양산 촌놈’인 나는 당연한 듯 불참을 선언 했지만 헌신회 전날 밤 늦게 새벽까지 헌신회를 준비한다는 윤석이소식을 듣고 미안한 마음이 들어 안식일 예배만 드리고 서울로 날아 올라갔고 사전교육에는 늦었지만 헌신회는 참여할 수 있었다. 가서 보니 훨씬 바쁘게 생활하시는 선생님들과 학생들도 다 참석해 있는 것을 보고 오지 않았다면 안되었겠구나 라는 반성을 하게되었다. 또 봉사대를 통해 처음 만나는 학생들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봉사대에 대한 기대를 한껏 크게 만들 수 있었다. 특히 반가웠던 분이 한분 계셨는데 예전에 우연히 열린 의사회라는 단체를 통해 의료봉사를 같이 갔던 김영선 간호사님이 우리와 같이 봉사대를 가기 위해 와 계신 것이었다. 신기하기도 하고 반갑기도 하고 봉사 경험이 많으신 분과 함께라니 든든한 마음도 들었다.

 

 

무사히 기말고사를 마치는 동안 회장단과 많은 학생들이 봉사대 준비로 수고를 해주었는데 나는 아무것도 해 줄 수 있는게 없었다. 할 수 있었던 건 기도

그리고 드디어 1학기가 마쳤다. 출국전날인 20일에 예정되어있던 예비군 훈련도 미뤘다. 20일부터 21일에 있던 동아리 엠티도 안갔다.

 그리고 대망의 721! 나의 SMA 첫 해외 봉사대를 출발한다.

 

 

To be continued…(비행기는 언제타니….)

후기 #4. 24일(화)

아침 6시에 모닝콜을 듣고 잠시 깼다가 다시 잠들었다가 일어났다. 전날에 춥게 잠들었기 때문인지 몸이 으슬으슬했고 목도 좀 부어 있었다. 방 밖으로 나가 보니 비가 내리고 있었다. 비가 오면 환자가 적게 올 것이고, 그러면 전날만큼의 혼잡은 벌어지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씻고 6시반에 예배를 드리러 모였다. 오늘 아침 말씀은 현지 통역이 자신이 하나님을 믿게 된 과정을 이야기하는 간증시간이었다. 불교 가정에서 태어난 그가 대학교 유학 때문에 재림교 목사인 삼촌 집에서 살면서 하나님을 받아들이게 된 과정을 들었다. 자신의 아버지가 폐암에 걸리고, 아버지를 위해 기도했지만 아버지가 사망하고, 교회를 떠났다가 다시 하나님을 만나는 이야기를 들으면서 은혜를 받았다. 특히 서준이의 정확하면서도 재치 있는 통역이 있었기 때문에 더욱 좋았던 시간이었다.

 

예배 후에는 어제와 같은 방식으로 아침 식사를 했다. 이날은 특별히 강하라 선생님의 오카리나 연주가 있어서 좋았다. 연주는 다 좋았지만 변주를 시도했던 마지막 곡에서 잘 연주가 되지 않아 용두사미 같은 느낌이 들었던 것은 옥에티였다.

 

식사 후에 진료소로 이동했다. 비가 왔기 때문에 다들 한국에서 공동 구매한 우비를 입고 차에 탔다. 많은 학생들이 트럭 짐칸에 타고 있는 모습만으로도 충분히 이상해 보일 텐데, 거기에다가 알록달록한 색깔의 우비마저 입고 있으니 라오 사람들에게 우리가 얼마나 이상하게 보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병원에 도착했을 때에는 생각보다 사람이 적게 와 있었다. 다행이라는 생각부터 들었다. 빗물로 인해 땅바닥이 젖어 있어서 트럭에서 내리면서 발이 진흙 범벅이 되었다. 발이 젖지 않고 내릴 수 있는 곳에 차를 세워줬더라면 하는 아쉬운 생각이 들었다. 차에서 내리자마자 윤석이가 나서서 건강교육 장소 주위에 줄을 감고 번호표를 만들었다. 진료 준비를 하면서야 듣게 된 사실은 전날에 300여명의 환자들에게는 차트를 주어서 돌려보냈고 그 사람들이 오늘 오기로 했다는 것이었다. 차트를 전부 걷어서 보관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세웠던 계획을 즉석에서 수정할 수밖에 없었다. 우선 전날에 걷어서 보관하고 있던 모든 차트를 통역들을 통해서 환자들에게 전부 다시 나누어 주었다. 오늘 처음 온 환자들의 경우에는 오늘은 진료를 받을 수 없고 다음 날에 찾아오도록 안내하고 번호표를 주어 돌려보냈다. 전날 마지막까지 남아 있다가 진료를 받지 못하고 돌아가면서 별표 스티커를 받았던 환자들을 우선적으로 접수 받아 진행했고 그 이후에는 차트번호가 빠른 사람부터 순서대로 들여보내서 진료했다.

 

방문진료는 강기훈 선생님께서 진하와 함께 가시기로 했다. 체중과 키만 재기로 했던 기존 계획에서 바뀌어서 진료까지 하게 되었고, 방문진료로 배정해 두었던 사람들의 명단에도 변경이 있어서 혼란스러운 부분들이 있었다.

 

조현정 선생님은 기술이전 세미나를 하러 도립병원에 다녀오셨다. 그런데 하필 조현정 선생님께서 도립병원에 가 계신 오전 동안에 진료실에 찾아와 아이를 분만한 산모가 있었다. 아이와 산모의 상태가 둘 다 좋지 않았지만, 여러 선생님들의 노력으로 분만과 그 이후의 조치가 잘 이루어졌다.

 

나는 오전에 예진, 오후에 진료보조를 했다. 오전 예진은 한-라 통역을 하시는 조범수님과 함께 진행했다. 아무래도 한국인이었기 때문에 말이 잘 통했고, 의학 용어도 어느 정도 이해하셨기 때문에 예진하기가 힘들지 않았다. 또한 진료 둘째 날이어서 그런지 전날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질서 유지도 잘 되었다. 오후에는 최대로 선생님의 진료 보조를 하면서 물리치료/ECG도 함께 했다. 이날은 질서 유지에 초점을 맞추었기 때문에 EMR을 사용하지 않았다. 약속처방을 손으로 옮겨 적고 cosign을 하는 것도 나름 재미있는 작업이었다.

 

진료를 마친 뒤에 전날 저녁을 먹었던 식당으로 식사를 하러 왔다. 용과와 렁간 등의 과일이 제공되었던 것은 좋았다. 나는 전날과 달리 채식주의자 자리에 같이 앉아서 식사를 했다. 현정이 누나가 파래김을 챙겨오셔서 맛있게 밥을 먹을 수 있었다. 다만 다들 밥을 거의 다 먹고 난 다음에야 파래김을 기억해 내신 것은 약간 아쉬웠다. 후식으로는 라면을 먹었다. 원래는 숙소에서 끓여 먹으려고 가져왔던 라면이었지만, 숙소에서 조리를 할 수가 없어서 이곳 식당에서 만들어 먹은 것이었다. 오랜만에 먹는 라면이었기 때문에 맛있게 먹었지만 내 입맛에는 짜게 느껴졌다.

 

식사 후에 피드백은 훈훈한 분위기 속에서 진행되었다. 피드백 후에 현정이 누나는 분만중인 산모를 보러 몇몇 사람들과 함께 다시 병원에 가셨다. 남은 사람들은 박병원 선생님의 지중해빈혈에 관한 사업에 대한 특강을 들었다. 라오스로 오는 비행기 속에서 박병원 선생님께 개인적으로 한 번 들었던 이야기였지만, 그때보다 구체적인 내용을 많이 들을 수 있었다. 박병원 선생님께 대한 존경스러운 마음이 들었다.

 

식사를 마치고 숙소로 돌아와서 소그룹을 했다. 이날은 우리 1조가 1층에서 소그룹을 하는 날이었다. 박병원 선생님은 다른 숙소에서 잠을 주무시게 되어서 함께하시지 못했다. 조현정 선생님은 분만하는 산모를 보러 가시느라 병원에 가 계셔서 함께하시지 못했다. 남은 6명이 2개의 침대에 3명씩 나누어 앉아서 소그룹을 했다. 유민이가 조장으로서 잘 지도해 주었다. 믿음에 관한 이야기를 하면서 짧지만 유익한 시간을 보냈다.

 

소그룹을 마치고 방에 돌아와 잠들었다.

진하정의 라오스 봉사대 사족99% 후기 2

 

그렇게 그렇게 들뜬 기분을 한순간 가라앉히고 몽족마을에 도착했습니다.

정말 이런 곳에서 과연 사람이 살고있을까 생각할 정도로 주변에 온통 산 산 이었는데 마을이 나타났습니다!

 

이곳은 26가구가 사는 작은 마을이에요~ 그래도 가족 단위가 커서 그런지 사람수가 100명은 넘고 200? 정도 사는 것 같았습니다. 비가 조금씩 오고 있었는데 저희가 봉사할 곳은 언덕 위 작은 초등학교. 언덕 위는 아름다웠으나 올라가는 길은 비에 젖은 진흙, 곳곳에는 소의 것으로 추정되는 똥이 정~말 많이….. 운동화를 신고 와서 어찌나 다행이었는지요.. (그 이후로 라오스에서 그 운동화는 다시 신지 못했다는.. 한국에 돌아와서 엄마한테 몽족 마을과 함께 저의 진흙반 똥반 운동화를 소개해드렸더니 그자리에서 제가 빨아야 했다는..ㅋㅋㅋ)

 

학교의 한 반을 진료실로 정하고 사람들을 들어가게 했습니다. 학생들의 책상에 40명정도가 쭉 앉았지요. 사실 누가 먼저 왔는지도 모르겠고, 어디서부터 불러야 할지 대책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함께 사는 사람들이라 그런지 순서를 저희 맘대로 정해도 전혀 불만 없으셨고, 절대로 크게 소리 낼 일이 없었습니다. 몽족마을 정말 평화로움~^-^

 

처음에는 차트가 없으니 선생님 옆에 앉아 환자 기록을 종이에 순서대로 적었습니다. 선생님께서 불러 주시는 데로 환자 신상, 증상, 처방 등등을 적고 선생님께선 약봉투 위에 약국에서 볼 처방전을 다시 적으시고.. 차트를 챙기지 않은 결과였죠하지만 이것은 약과.. 그때는 이것으로 후에 제게 어떤 일이 일어날지 전혀 예상치 못했다는…..

 

그래도 저는 선생님 옆에 앉아서 기록하는 게 나름 재밌었어요! 특이적인 환자도 있었던 것 같고, 선생님께서 말하시는 것 하나하나 귀기울이여 들었습니다. 정말 재밌었던 광경은 physical examination을 해야 하는 환자가 있으면 환자를 책상에 눕게 한 후에 복부 진찰을 하셨거든요? 그런데 그곳이 교실이고 책상은 칠판 앞 중앙에 놓여있으며 40명의 대기 환자가, 80개의 눈이 그곳으로 쏠렸죠. 정적이 흐르고.. 마치 의과대학에서 physical examination 강의를 듣는듯한 기분이랄까요..ㅋㅋㅋㅋ 선생님께서는 역시 수많은 시선에도 절대 굴하지 않으시고 멋있는 진료를 이어가셨다는^0^ !

 

그런데 어느 순간 이수정 약사님께서 밖에서 오래 기다리고 있는 사람들을 위해 직접 나서셨고, 저는 약국(옆 책상)으로 이동했습니다. .. 이렇게 전 또다시 강기훈 쌤과 멀어져만 갔지요..ㅠㅠ

 

약국은 정말 정말 심심했어요. 봉사지의 모든 약을 다 가져올 수 없는 상황인지라 약의 개수가 적었고, 무엇보다 몽족마을은 라오인들과 쓰는 언어가 달라요. 그래서

 

강기훈쌤 영라오 라오몽 환자 몽라오 라오영 강기훈쌤

 

무려 세가지 언어로 전달전달 하는 상황이니 환자 한명 보는데 엄청 오래 걸렸어요. 게다가 라오몽 통역이 그마을 의사선생님이라는 엄청난 함정이 있었으니ㅋㅋ

 

강기훈 쌤이 한마디 보내시면, 그분은 이때다! 하고 진료를 보시는 듯했어요…. 어찌나 말을 많이 하시던지..ㅋㅋㅋㅋ;;;; 상황이 이렇다보니 약국에 앉아있던 저는 꾸벅.. 꾸벅.. 졸기 시작했고.. 결국 대기하고 있던 마을 아주머니 아저씨들이 절 보며 키득거리는 소리에 깼습니다. 강기훈 선생님께서 미소지으시며 많이 피곤하니?” 하시는데 어찌나 부끄럽던지요.ㅋㅋㅋ;;;;;;;;;; 아.. 선생님과 또다시 멀어져가는 기분이ㅜㅜㅜ

 

얼마 지나자 오이사님께서 마을에 도착하시고 저희는 이장님댁(?)으로 추정되는 곳에서 점심식사를 했습니다. 이장님댁으로 가는 길은 아까 올라왔던 그 진흙반똥반 길을 내려갔어야 하는데이런 것을 보고 온고지신이라 하나요. 아침의 배설물들은 진흙과 오버랩되고 있었으며 새로운 배설물들이 깔렸ㅋㅋㅋㅋ;; 아침에 내가 피해 밟은건 진흙이 아니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제가 보기에도 후기가 넘 더럽네요….ㅠㅠ) 여튼.. 미끌미끌 내려와서 이장님댁 도착. 역시 라오스타일은 맨땅위에 집. 게다가 집안에서는 캠프파이어가..;; 호흡기질환돋는 구조라는..ㅜㅜ;

 

거기에서 여러가지 음식을 대접을 해 주었는데 저는 그냥 오이사님께서 가져오신 MSG돋는 계란후라이와 밥을 먹었어요.ㅋㅋ;; (라오스의 음식은 미원이 많이 들어간다는) 밥을 다 먹으니 비가 꽤 내렸고, 비가 조금 멈추기를 기다리다가 다시 언덕위의 초등학교로 올라갔습니다.

 

오후진료는 오전진료와 큰 차이는 없었습니다. 오이사님께서 봉사지에서 배달해주신 약들로 갯수가 더 늘었다는점?

 

아침에 도착했을때부터 저는 지뢰를 피하며 올라오기에 바뻤는데 강기훈 쌤은 마을 구조를 살피셨어요. 길 상태도 그러하며, 가구보다 가축우리가 위에 있는 집들도 여럿 있었던 점, 어린아이들은 신발을 신지 않는다는 점을 지적하시며 이러면 감염환자가 많을 거라 하셨지요. 역시 감염환자가 꽤 많았었던 것 같아요. 생각나는 것은 허벅지에 꽤 심하게 봉와직염 생긴 아기도 있었는데 이 아기는 병원으로 보냈습니다.

 

오후진료는 생각보다 일찍 마쳐졌어요. 내려오면서 드는 생각이 이 마을은 천국같다는… 그것은 바로 동물과 함께 뛰노는 아이들. 이것이 바로 제가 어릴때부터 그리던 하늘나라의 모습이었거든요.ㅋㅋㅋㅋ 사자등에 업히고 기린목에서 미끄럼틀타는 하늘나라…ㅋㅋ

으악 그러나 동물과 함께 뛰노는 실상은 그리 좋지만은 않더군요천국에서도 동물원이 있어야할듯…;;ㅋㅋ

그날 강기훈 선생님은 78명의 환자를 보셨고, 저희는 또다시 꼬불꼬불 산길을 달려 봉사지로 돌아왔습니다. . 돌아오는길에 잠깐 스친 작은 마을이 있었는데 찰나였지만 저는 보았습니다. 아이들이 꽤 큰 돼지와 함께 뛰는 모습을..ㅋㅋㅋㅋㅋ;;; 이런게 천국 아니겠어요? ^-^;;;

 

돌아오는 길에 저를 위협하는 것이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종이에 적혀진 78명 환자들의 차트. 강기훈쌤이 그걸 제게 건네면서 돌아가서 이 차트를 정리하라고 하셨어요.. 끄악! 저는 도착하자마자 윤석오빠한테 차트 80장을 받았습니다. .이게 생각보다 꽤 오래걸리더라구요.. 딱히 쓸 책상의자가 없어서 어디서 해야하나 헤매다가, 아무도 없이 바람만 부는 야외 접수파트에서 홀로 쓸쓸히 차트를 정리했습니다. 어찌나 쓸쓸하던지 혹은 씁쓸하던지.. 궁상맞지만 제 폰으로 노래를 틀었습니다. 그날 저녁에 서준이가 제게와서 자세의 흐트러짐 없이 열심히 하는 모습이 멋있었다고 말을 해주더라구요ㅋㅋㅋㅋㅋㅋ……….. 그날 밤 소그룹을 마치고 딱딱한 침상 위에서 남은 차트를 정리하는 저의 자세 또한 흐트러질 틈이 없었다는….;;

이렇게 큰 설렘으로 갖고 떠났던 저의 방문진료날은 씁쓸하게 마무리되었습니다.. ^^

 

너무너무 값지고 즐거운 경험!! 강기훈 선생님 감사해요~^-^

 

벌써 해가 지고 꿀같은 안식일이 지나가버렸네요..

흠, 제 후기가 너무너무 길어졌죠..ㅠㅠㅠ;;

이제 공부를 시작해야겠어요.ㅠㅠ 진료보조 후기는 이번주 시험 끝나구 올릴게요.ㅋㅋㅋㅋㅋ

그럼 모두 즐거운 주말 보내세요~ ^-^

꾸벅 

 

 

후기를 이제야…1

안녕하세요~
봉사대 다녀온지가 벌써 한달이 넘었네요ㅋㅋ
미천한 예과생주제에 골학했다고 엄살 피우다 이제야 후기를 씁니다 ㅎㅎ

7/21 토요일 라오스로 출발

아침 4시반 졸린 눈을 비비고 일어나서 어제 대충 싸둔 캐리어를 마무리짓고 구리시로 유진이를 태우러 아빠차를 타

고 출발! 이번 라오스 봉사대는 사이버부장이라는 오묘한 직책을 맡아 회장단으로 게다가 유진이까지 데려가는 봉사

대여서 심리적인 압박을 조금 받으면서 갔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9시 비행기를 기다리면서 유진이랑 방콕에서 주어

진 6시간을 어떻게 알차게 보낼까 생각하다 보니 기대와 설렘을 안고 방콕행 비행기를 탑승했다. 방콕에 도착해서

환전과 정보를 얻느라 우물쭈물하다가 입국 심사대에 늦게 도착해서 생각보다 오래 나가있지는 못했지만 까짓꺼 아

빠 카드도 받았는데 비행기 놓치면 새로 끊지뭐 라는 생각으로 열심히 구경하고 놀았다ㅋㅋ 방콕을 출발해서 밤 9시

라오스에 도착!

비행기에서 내리자마자 엄습하는 습기와 열기에 와;; 고생좀 하겠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입국 심사대로 향해 가는

앞에 현정누나를 닮은 사람이?! 본대는 1시간 후에 도착이니까 현정누나는 아닐텐데 굉장히 닮았네 라고 생각하고

있는데 속속들이 도착하는 선생님들과 봉사대원들. 인사를 나누고 짐을 실고 막사이 파라다이스 숙소로 향했다.

도착해서 현지인처럼 짐을 날라주고있던 서준이와 같은 방에 들어갔다. 예배를 드리고 난 뒤 에어콘이 있는 3층 방

들에 모여서 드래곤과일과 밤알만한 과일을 먹었다. 먹어본 용두과 중에 가장 싱겁고 맛이 이상했지만 몸에 좋은거

라고 혀를 속이며 상훈이형이랑 열심히 먹었다. 볼때마다 사촌누나를 생각나게해서 웃게만든 초아누나, 침대구석에

서 모자 뒤집어쓰고 용두과먹는걸 구경하던 다은누나 학생인줄 알았는데 선생님의 포스가 느껴지던 자연누나까지

새로운 얼굴들을 익히는 다과시간이엇다.

7.22 일

어젯밤 오랜만에 만난 서준이랑 이야기하다 늦게 자는 바람에 알람도 끄고 늦잠 ㅋ은섭이형이 깨워서 내려갔을때는

이미 8시20분 출발 10분전;; 로비에 있던 빵에 잼만 발라서 서둘러 챙기고 씨엥쿠앙으로 가기 위해 국내선을 타러갔

다. 공항에서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수정이모가 개인에게 할당된 짐 무게를 훨씬 초과해서 모든 짐을 비행기에 싣는

기적을 보았다. 경비행기를 타고 씨엥쿠앙으로 갔는데 가는 내내 보았다 아름다운 경치와 심장을 쫄깃쫄깃하게 해주

는 흔들림에 피곤했지만 잘 수 없엇다. 우리나라 간이역 정도의 씨엥쿠앙 공항? 에 도착해 트럭들에 짐을 나눠싵고

약 40분간 달려서 봉사기간 숙소로 사용될 기숙사에 도착했다. 지나치면서 찜통같던 비엔티엔에서와는 달리 쿤 지역의 날씨는

바람이 많이 불고 비가 자주 오며 서늘해서 좋았다. 짐을 대충 풀어놓고 쿤 군 병원으로 가서 진료를 위한 세팅을 했

다. 비록 치과의 이 모 누나의 매우 신중한 선택으로 인해 똑같은 침대를 이리옮기고 다시 갖다놓고 하느라 힘들었지

만 ㅋㅋㅋ 작년과는 또 다르게 많은 선생님들과 심전도와 심전도 같은 전문기기등을 보면서 기대감에 가득찼다.

배고픈 배를 이끌고 라오스에서 처음 간 식당은 쌀국수 집! 치킨 쌀국수와 소고기 쌀국수가 있었는데 범태 기자님을

백으로 서준이랑 2그릇씩 먹었다ㅋㅋ 숙소로 돌아와 고등학교 기숙사 화장실 같은 물이 안빠져서 바닥에 비누거품

이 넘실대는 화장실에서 씻고 돗자리를 깔고 잠을 청했다. 동남아니까 당연히 선풍기를 틀어 놓고 잤는데 바닥에서

올라오는 한기로 너무 추워서 벌벌 떨면서 잤다.

7.23 월 봉사 1일째

첫째날 유진이와 약국으로 배정을 받았다. 수정이 이모가 약사를 하니까 뭔가 가족 선교를 온것 같아서 좋았다 ㅎ

동우형이 야심차게 준비한 EMR?? 인가 전자 문진을 받고 약 처방전을 프린트 하는 일이었는데 허리가 아픈 환자에

게 알레르기약이 처방됫다고 나오는 등 문제가 생겨서… 그날부로 전자 문진은 끝이났다. 그일이 너무 안타까워서

이날 있었던 다른일들은 잘 기억이 나지않네요; 주향누나랑 수정이모 계속 이것저것 물어봐서 귀찮았을 텐데 짜증안

내고 잘 알려주셔서 감사햇습니다 ㅋㅋㅋ

7.24 화 봉사 2일째

스마의 보이지 않는 기둥은 의과!! 였지만 유일한 예과생 값싼 인력인 나는 치과로 파견을 나갔다. 필리핀에서 소독

과 스케일링 어시 1번의 경력이 있다고 잘할거라고 기대를 하셔서 실수 안하려고 노력하느라 힘들었다ㅋㅋㅋ

스케일링 어시는 몸이 고생하지만 뭔가 내가 없는 지식으로도 도움이 되는 봉사를 하는 거 같아 보람찼다 ㅋ 하지만

치과로 파견 나가면 현지 환자들과의 소통이 거의 없을 수 밖에 없어 아쉬웠다.

봉사가 끝난 후 저녁식사 시간, 필리핀에서 끓였던 비빔면 30개의 추억을 가지고 진라면 30개를 끓였다. 비빔면때

면발이 불어버렸던걸 만회하기위해 소은누나 다은누나 서준이 지혁이형 자연누나와 열심히 끓였다. 이번에는 정말

잘 끓여졌다고 생각했는데 생각외로 엄청 많이 남았다 ㅋㅋㅋㅋ 손도 못댄 한 그릇은 결국 주방을 빌려주신 식당분

들께 드시라고 반강제로 드린게 마음에 걸린다.

7.25 봉사 3일째

오전은 건강교육을 했다. 서준이를 믿은만큼 라오스 통역사 폰을 믿었기에 내가 뭘 빼먹더라도 다 채워주리라는 믿

음으로 건강교육을 했다 역시 폰이 보충 설명까지 곁들여 가며 설명을 끝마쳤다. 건강교육이 끝나고는 번호표를 나

눠주고 대기환자를 통솔하는 일을 했는데 할 줄 아는 라오스 말이라고는 “싸바이디 속디 컵짜이” 이 세마디가 전부

여서 처음엔 굉장히 민망했다. 치과환자를 5명 씩 보냈는데 진료가 길어지면서 사람들이 계속 재촉하기 시작했다.

내가 무전을 칠때마다 5명 씩 보낸다고 눈치를 챈 사람들이 계속해서 무전을 치라고 재촉했고 무전에서 소리가 들려

올때 마다 아줌마 아저씨들이 웃으면서 표를 달라고 했다. 줄을 세워도 늦게온 사람들이 자연스레 새치기하고 원래

있던 사람들도 웃으면서 내 반응을 지켜볼뿐 아무런 불만이 없는걸 보고 와 라오스 사람들 정말 순진하고 즐겁게 사

는 구나 했다 ㅋㅋ 봉사기간 유일하게 말은 안통하지만 사람들과 소통하고 웃을수 있어서 즐거운 시간이었다.

오후: 치과에 갔다.

늦게 후기를 쓸려니 힘드네요ㅋㅋㅋ 두서가 없어서;;
다음편에 나머지를 쓰겟습니다

진하정의 라오스 봉사대 사족99% 후기 1


안녕하세요^^

 

요즘 원주에 짱박혀 있는 진하정입니다.^^!!! 혹시 저를 모르는 사람을 위해 원주의과대학 본과 2학년이며 휘경동에 사는 진하정진하 ㅋㄷ

저는 20일에 개강을 해서 그럭저럭 아주아주 심심하게 살고 있어요…-0-  제 여름방학 한 달은 온통 스마로 스마스마 채워서 꽉꽉 찬 느낌이었는데 개강과 함께 밀려오는 이 withdrawal이란..ㅠㅠ 손이 떨릴 지경이라는..-_

굉장히 dry한 학기 하지만 분명 저뿐만 아니라 다른 스마인들도 마찬가지 일거라 생각하렵니다. ~

 

저는 예과 1학년에 캄보디아 봉사대를 다녀와서 엄청 열심히 후기를 썼었어요. 결국 비전트립도 못간 시점에 사진 없이 글자 크기 10으로 8페이지를 채우는 지경에 이르러서.. 그자리에서 그대로 컴퓨터에 묻었다는.. 아는 사람만 아는 이야기가…. 그 이후로 봉사대 후기란 없다! 너무 쓸 게 많아서 시작할 수가 없다를 밀며 후기를 쓰지 않았습니다.ㅋㅋ;;(죄송..) 아무 생각도 없었던 제가 개강도 한데다 봉사한지 한 달이 된 이 시점에서 갑자기 후기를 써내려는 것은,

치과만 존재하는 학생임군의 블로깅.. 의과도 가만있을 수는 없지! 그리고 무려 선생님들께서 후기를 쓰시는 사태로 강의실 의자가 가시방석이 되어버렸어요ㅠㅠ 도저히 안되겠다 싶어서 이렇게… 비루하기 짝이 없지만 제 기억을 써보려구요~ㅋㄷ (저도 사진첨부하면서 생생하게 전달하고프나.. 미천한 제겐 블로그가 없다는..ㅜㅜ) 참고로 제 글은 언제나 그렇듯 사족 99%

 

무엇을 쓸까 짧게 고민을 하다가 제가 택한건 방문진료와 의료보조! (출발부터 도착까지 쓰면 한학기 내내 쓰고 있을수도ㅋㅋ)

 

우선 저의 이번 봉사대는

제가 학생시절에 마지막으로 갈 수 있는 봉사대 였습니다ㅠㅠ (혹시 내년에도 따라가면 모른척 해주셈ㅋㅋ)으헝헝 너무너무 아쉬워요…. 그러나 아쉬움을 달래주듯 지난 4년간의 스마 봉사대 중 제게는 이번이 단연 최고~ !!! > < 이유인 즉, 몇 년간은 항상 치과 쌤들만 많고 의과쌤들은 비교적 적게 오셨지요.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을 알지만 그래도 저는 항상 그것이 너무 아쉬웠거든요.ㅋㅋ 그런데 

두둥

이번에는 의과쌤이 6!!!!!! 

무려 여섯분!!!!!!!!!!! 

꺅 선생님 정말 사랑해요ㅠㅠ♥ 세상에 ㅠㅠ 제가 언제나 간절히 원했던 의과 선생님의 시대가 도래함. 떠나기 전부터 이미 초감동~ㅠㅠ 봉사 첫날에 최대로 선생님께서 의과선생님들과 의과학생들을 모으셔서 간단히 브리핑(?)도 하고 넘 좋았어요~ 완전 의과~ 최대로 선생님 정말 감사합니다. ㅠㅠ

 

따라서 제가 크게 깨달은 것이 있었으니

스마의 보이지 않는 기둥은 의과였다

기억하세요 ㅋㅋㅋ

 

여튼

첫번째 기록. 방문진료

저는 봉사 둘째날, 몽족마을 방문진료를 떠나게 되었습니다. 저의 배치를 그날 아침에 들었는데 듣는 순간부터 너무너무 들떴어요!! 제게 이런 기회를 허락해 주시다니!!^0^ 보는 사람마다 오늘 방문진료 따라간다고 자랑에 자랑을 더했죠. 아침을 먹고 우선 다함께 병원으로 갔습니다. 그리고 조금 후에 방문진료를 나갔지요. 행여 절 깜빡 하실까 염려되어 가장 먼저 봉고에 후다닥 올라타서 대기하고 있었다는..^.^;;; 강기훈쌤, 이수정약사님, 노수현VJ, 김범태기자님, 오이사님 따님, 그리고 저. 이렇게 함께 떠났습니다. 그 마을은 해발 1800m 산골짜기에 위치해 있어서 꼬불꼬불 산을 차로 30분가량 달렸어요. 저는 내심 이번 기회를 통해 강기훈선생님과 친해져야겠다!는 마음으로 질문 리스트까지 생각하면서 엄청 설레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

차가 출발하고, 강기훈 선생님께서 가져가는 물품을 하나둘 체크하셨습니다. 저는 그때까지만 해도 전혀, 아무 생각 없었죠..

선생님께서 제게,

 

학생 체온계 챙겼어요?”

 

일차멘붕

 

학생 줄자 챙겼나?”

 

이차멘붕

 

학생 체중계는?”

 

삼차멘붕

 

차트?”

 

사차멘붕!!!!

 

끄악! 이럴수가ㅠㅠ

저 진짜 아무것도 들은 게 없었어요ㅠㅠ 학생은 보고 들으러 가는 줄….. 그게 제 일인줄 알았어요.. 제가 생각이 넘 짧았죠.. 가서 뭘 해야 하는지 물어보기라도 했었어야 했는데.. 그저 손은 가볍게, 들뜬 마음만 한아름 봉고에 싣고……..

가는동안 학생에게 전달이 잘 되지 않는 것에 대해 다같이 고찰을 했으며, 여러 가지 준비가 안 된 것을 다음 날 방문진료 때는 되풀이되면 안되겠다는 피드백을 . . . .ㅠㅠ

제 그날의 목적, 선생님과 친해지기는 처음부터 틀렸다는 생각에 우울해져서 봉고에서 있는 듯 없는 듯 조용히 마을까지 갔습니다.ㅠㅠㅠ 저 정말 강기훈 선생님과 얘기 많이 해보고 싶었는데.. 선생님은 멀게만 느껴졌습니다.ㅠㅠ 아마 저는 봉고 속에서 쥐구멍을 찾고 있었던 듯..



‘-‘; 쓰다보니 글이 이렇게 불어날 줄이야… 원래 한편으로 끝내려고 햇는데 이쯤에서 잘라야 겠어요;ㅋㅋ

다음편으로 올릴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