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지혁이 형이 깨워서 일어났다. 다행히 샤워실들이 비어 있어서 샤워를 할 수 있었다. 캐리어에 담아온 반찬에서 양파즙이 새어 나와 내가 챙겨온 유일한 수건을 적신 상태여서 양파즙에 닿지 않은 부분으로만 몸을 닦았다. 방에 돌아와서야 전날 밤에 호텔에서 개인별로 나누어 준 수건이 눈에 들어왔다.
아침 7시에 아침 예배를 드리는 줄 알았는데, 식사를 먼저 한 이후에 아침 예배를 드리는 일정으로 바뀌어 있었다. 토스트와 과일 등으로 간단한 아침 식사를 했다. 전날 밤에는 칼이 없어서 먹지 못했던 망고를 이날 아침 식사 후에 먹게 되었는데 다들 덜 익은 상태였기 때문에 기대했던 것만큼 맛있지는 않았다. 아침 식사가 끝날 때까지 석형이와 서준이는 보이지 않았다.
아침 식사 후에 현지 라오스 목사님을 통한 간단한 예배를 드렸다. 사실 목사님께서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 어떤 기도를 하시는지를 거의 알아들을 수 없었다. 햇볕은 강하고, 내가 앉은 자리는 목사님과 멀리 떨어져 있고, 나는 영어를 잘 못하고, 목사님도 영어를 잘 못하셨기 때문이었다. 나중에 듣게 된 사실은 목사님이 처음에는 영어로 기도를 시작하셨지만 나중에는 라오어로 기도하셨다는 것이었다. 영어가 쉽지 않다는 것을 다시 한 번 느꼈다. 전날 밤에 찬타파냐 호텔에서 묵으셨던 선생님들께서 예배가 끝날 즈음에 우리 숙소로 찾아오셔서 합류하셨다.
예배 후에는 짐을 챙겨서 차 두 대에 나누어 믹사이 파라다이스 호텔을 떠났다. 전날 밤에 312호에서 과일을 먹었던 사람들은 호텔에서 빌려준 수건 위에 과일을 올려두고 먹어서 수건 하나를 못 쓰게 만들었기 때문에 배상을 하기도 했다.
봉사지로 가는 국내선 비행기를 타기 위해 공항에 도착해서 짐을 부쳤다. 짐이 많고 무거웠지만 항공사 측에서 많이 협조해 주어서 어렵지 않게 짐을 보냈다. 짐을 부치는 중에 남는 시간에 심카드를 사러 공항 내 매점에 갔는데, 공항이라서 특별 가격을 받는다며 원래 가격의 5배 가격으로 팔고 있었다. 박병원 선생님의 도움이 없었으면 그런 사실을 모른 채 바가지를 쓸 뻔했다. 결국 심카드는 한여울 선생님께 부탁드려서 나중에 현지 시내에서 구입하기로 했다.
짐을 부치고 출발 수속을 밟은 이후에 비행기 탑승을 기다리는 동안 이수정 선생님께서 나와 상훈이, 주향이 누나 등을 부르셨다. 무슨 일로 불려갔나 궁금했는데, 알고 보니 단체짐을 맡게 된 것이었다. 나는 E1~5번 박스를 맡았는데, 나머지 박스들은 트럭으로 봉사지까지 이동하고, 비행기에는 E1, E3 박스만 실리게 된다고 했다.
출발 시각이 되어 비행기까지 걸어서 이동하면서 본 비행기의 모습은 아담하고 신기하다는 느낌을 주었다. 양쪽 날개에 하나씩 달려 있는 커다란 프로펠러는 이것이 국내선 비행기임을 알게 해 주었다. 위험하지 않을까 걱정하는 마음도 들었지만 약간 시끄럽고 덜컹거리는 것을 제외하고는 별 문제 없이 금방 비행이 끝났다.
씨엥쾅에 도착해서 비행기에서 내리는 순간에 의외로 덥지 않은 날씨와 습하지 않은 공기 때문에 놀랐다. 더불어 봉사대 기간 동안 날씨 때문에 고생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예감이 들었다. 그러나 다시 한 번 나를 놀라게 한 것은 버스터미널을 연상시키는 공항의 작은 규모였다. 비행기에서 내려서 공항까지 걸어가는 자갈밭도 낯설었고, 부쳤던 짐을 비행기에서 내려 리어카에 싣고 공항까지 나르는 모습도 낯설게 느껴졌다.
공항에서 부쳤던 짐을 찾고 수속을 마친 후에 트럭 2대에 나누어 타고 숙소로 이동했다. 내 옆에는 진하와 은섭이형이 있었는데, 다들 앉아서 가지는 못했지만 라오스의 자연 풍경과 의외로 잘 정비된 길에 만족하면서 사진을 많이 찍었다. 다만 우리가 탄 트럭은 무게 때문인지는 몰라도 속도가 빠르지 않았기 때문에 다른 트럭들에 추월 당해 앞차의 매연을 맡아야 하는 일이 종종 생겼다.
1시간 정도 이동하여 쿤 지역에 있는 숙소에 도착했는데, 처음에는 낡은 학교 건물을 보고 실망했지만 실제 숙소는 학교 건물 뒤에 있는 기숙사 건물이었기 때문에 그나마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숙소는 각 층마다 화장실과 샤워실이 있는 2층 건물이었고, 처음에는 남학생이 1층, 여학생이 2층을 쓰기로 했지만 침대가 주로 1층에 있었기 때문에 여학생들을 배려해서 층을 맞바꾸어 쓰기로 했다. 덕분에 2층에 있던 침대를 1층으로 줄에 달아 내리는 진풍경을 보기도 했다.
선생님들 중 몇 분께서는 학생들과 같은 숙소를 쓰시기로 하셨는데, 최대로 선생님, 박병원 선생님, 현지인 통역 2명이 2층 오른쪽 끝 방을 쓰시고, 강기훈 선생님과 강하라 선생님, 나머지 남학생들은 4개의 방을 쓰기로 했다. 각 방마다 3명씩 사용하면 되는 상태였는데 강하라 선생님과 윤석이는 잠을 잘 때의 생리적인 이유로 인해 오른쪽 2번째 방에 배정되었다. 나는 강기훈 선생님과 함께 오른쪽 3번째 방을 쓰기로 했다. 나머지 학생들은 2개의 방에 4명씩 모여서 자기로 했다.
그런데 캐리어를 끌고 배정받은 방에 들어가 보니 말 그대로 아무것도 없었다. 신축 기숙사라고 해서 어느 정도는 예상했던 일이었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방 바닥에도 아무것도 없어서 가져온 침낭을 깔고 자야 하는 상황이었다. 그나마 다행스러웠던 것은 콘센트가 충분히 있다는 사실이었다. 나중에 방마다 큰 생수통 하나와 휴지, 인원수만큼 컵과 돗자리가 제공되어서 도움이 되었다.
우선은 숙소에 캐리어를 가져다 두고 필요한 짐만 챙겨서 점심식사를 하러 숙소를 떠났다. 도중에 선생님 숙소에 잠시 들렀다가 점심 식사를 하러 한 식당으로 이동했다. 점심 식사는 채식주의자끼리 모여서 먹었다. 메뉴는 고기국물을 사용하지 않은 국수였는데 맛은 장담할 수 없다는 얘기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주문했다. 음식은 간은 되어 있지 않았지만 맛있게 먹을 수 있었다. 김영선 선생님은 채식주의자는 아니지만 우리 테이블에 음식이 금방 나올 줄 알고 합류하셨는데, 우리 테이블의 음식이 가장 나중에 나오는 바람에 실망하시기도 했다. 그렇지만 채식주의자 테이블에서는 강하라 선생님의 견과류와 강기훈 선생님의 김가루가 있어서 가장 푸짐하게 식사할 수 있었다.
식사를 마치고 봉사지인 병원으로 이동했다. 이곳의 공휴일인 일요일이었음에도 불구하고 현지에서 담당 공무원들, 관계자들, 직원들이 나와서 우리를 맞아 주었다. 박병원 선생님의 한-라 통역을 통해서 서로 소개와 인사를 나누는 시간을 가졌다.
그런 뒤에 진료소로 사용될 병원을 둘러보면서 어디에 어떻게 진료실과 검사실 등을 배치할 지를 결정했다. 건물이 총 3개가 ㄷ자 모양으로 배치되어 있었는데 생각했던 것보다 건물들이 컸고, 출국 전에 알고 있었던 것과 다른 부분도 있었다. 가운데 건물은 의과 진료실로 사용하고 나머지를 각각 치과와 약국이 사용하기로 했다. 진료실과 약국간의 거리가 멀어서 EMR을 사용하여 인쇄하는 일이 쉽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져온 짐을 풀고 장소에 맞게 세팅을 했다. 다들 자신이 해야 할 일을 알고 있어서 세팅이 잘 이루어졌다. 다른 사람들이 봉사지 세팅을 하는 동안 나는 EMR 사용을 위한 IP 공유기 설치를 했다. 약국과 진료실 사이의 거리 문제와 전원 공급 문제로 몇 가지 어려운 점이 있어서 시간이 오래 걸렸다. 결국 리허설을 해보지 못한 채로 저녁식사를 하러 이동했다.
저녁 식사는 또 다른 식당에서 했다. 봉사 기간 동안 매일 이곳에서 저녁 식사를 한다고 했다. 밥과 생선을 비롯한 몇 가지 메뉴가 제공되었는데 내 입맛에는 맞았다.
저녁 식사를 마치고 대부분의 다른 학생들은 숙소로 돌아갔지만 나와 이수정 약사님, 주향이 누나, 윤석이, 김형준 선생님 등을 포함한 몇몇 직원 및 관계자들이 함께 병원으로 이동해서 세팅 마무리를 했다. 또한 김형준 선생님의 도움을 받아 병원 내 무선 인터넷을 통해 프린터 드라이버를 다운받는 데 성공했다. 프린터는 다시 사무실로 가져간 상태였기 때문에 인쇄를 직접 테스트해 보지는 못했지만 일단 컴퓨터에는 드라이버가 설치되었기 때문에 마음이 놓였다.
한편, 한여울 선생님께서 내가 오전에 부탁드렸던 심카드를 가져다 주셨다. 여러 번의 시행 착오 끝에 심카드를 바꾸어 끼우고 요금을 충전했지만 무선 인터넷은 되지 않았다. 아쉽지만 결국 현지에서 모바일 데이터는 사용하지 않고 지내기로 했다.
세팅 마무리를 마치고 숙소로 돌아왔을 때에는 이미 소그룹이 한참 진행 중이었다. 우리 소그룹에서는 박병원 선생님, 강하라 선생님, 조현정 선생님 3분께서 열띤 토론을 벌이고 있었다. 나는 지쳐 있었기 때문에 별다른 참여를 하지는 않았다.
소그룹 시간이 마친 뒤에 방에 돌아와서 강기훈 선생님과 함께 약속처방을 만들다가 돗자리 위에서 그냥 잠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