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쓴이 보관물: 정지혁

수련회 소그룹시간에 소개했던 김준식 선교사 이야기 입니다.

인도에서 선교사로 활동하는 김준식 선교사님이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피부로 느꼈던 생생한 경험입니다.

소그룹시간에 대략 소개 했는데 풀버전으로 전해지는 감동이 더  클 것 같아서 동의를 받고 올립니다.

조금 길지만 시간 나실 때 읽어 보세요. 

우리 SMA 여러분도 새로운 한 학기 동안 하나님을 생생하게 체험하는 시간이 허락되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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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술이 바짝 타 들어갔습니다.

“출국 하실 수 없습니다.” 라는 출입국 관리자의 말은 밀폐된 공간 속의 공기처럼 시간이 갈수록 보이지 않는 두려움이 되어 숨통을 조여왔습니다.

아주 작은 실수였습니다.

6월25일부터 12월25일이 정확히 6개월이니 비즈니스 비자의 최장 체류기간인 180일을 넘지 않는 것으로 생각했던 것입니다.

‘4일 전 이 시간에만 왔었어도 아무런 문제가 없었을 것을~’

후회하기엔 돌이킬 수 없는 시간의 함정은 저 스스로는 도무지 해결 할 수 없는 문제들을 한 가득 안기고 재촉하기 시작했습니다.

외국인의 선교 활동이 허락되지 않는 인도에서, 비즈니스 목적으로 왔으나 사업 내역이 없는 경우이기에 그들이 경계하는 선교사로 의심받는 것은 어떻게 보면 너무 당연한 이야기였기 때문입니다. 

어떻게 임기 응변으로 구두 심문은 통과하고 빠져나왔지만 제출해야 할 서류를 준비하는 것이 막막했습니다.

인도에 등록된 회사의 정관 전문 사본, 사업자 등록증, 고용증명, 거주 증명, 입금가능 통장의 거래내역, 보증서 등 전에 한번 들어보지 못한 20가지가 넘는 서류들을 기간 내에 제출 한다는 것은 불가능이었습니다. 

여권에 찍힌 “Decline” 이라는 붉은 도장은 다시는 선교지에 돌아 올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낙인 처럼 마음을 헤집기 시작했습니다.

어디 하나 연락할 곳도 사람도 없었습니다.

정말 혼자였습니다.

기도했습니다.

숨이 막힐 듯 기도했습니다.

너무 억울해서 소리치듯 기도했습니다.

자칫하면 지난 5년동안 눈물로 일궜던 모든 것을 한 순간에 잃을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것도 이런 한심한 실수 하나에 말입니다.

‘다 이유가 있을 거야, 그래 다 하나님의 뜻이 있으실 거야.’

여러 번 자신을 다독여 봤지만 무기력한 시간은 흘러만 갔고 어느새 마지막 날이 되었습니다.

‘이렇게 끝인가……’

이런 낙담에 빠진 저에게 찾아 온 구원의 소식은 현지 연합회장님으로 부터 였습니다.

어려운 중에 있다는 소식을 들으시고 제가 있는 외국인 등록소에 오셔선 자신이 저의 보호자이며 필요한 서류를 제출 하겠다는 약속을 해 주신 것입니다.

하지만 감사한 마음도 잠시, 마감시간까지 두시간 밖에 남지 않은 상황에 20가지가 되는 서류들을 준비하기란 불가능해 보였습니다.

연합회 사무실로 가는데 걸린 한 시간은 지옥과 같았습니다.

‘갔다가 돌아오기에도 촉박한 시간에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그냥 포기하고 다른 방법을 찾을까?’

수 많은 생각 속에 무기력해지는 저와 달리 연합회장님의 얼굴엔 뭔가 생기가 있었습니다.

“준식씨, 내가 준식씨가 우리 삼육학교 교사로 일했다고 서류를 준비해 볼까해요. 그것이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인 듯 하고요.”

‘교사로? 한시간 밖에 안 남았는데?’

사무실에 도착한 목사님의 모습은 분주했습니다.

먼저 필요했던 것은 학교재단의 정관, 사실 600km나 떨어진 본원에서 정관을 구해 온다는 것이나 200페이지가 넘는 정관을 메일로 받아 시간 내에 프린트하는 것 모두 불가능 해 보였습니다. 

그런데 왠걸 책장을 뒤지시던 목사님의 외침, “여기 있다!” 놀라웠습니다. 작년 초 총회에서 나눠줬던 정관 사본 한부를 우연히 책장에 보관하고 계셨던 것입니다. 파랑색 갱지위에 적혀진 학교 이름 “Frez School” 이 희망이라는 글자로 보이는 것 같았습니다. 

목사님이 다급한 목소리로 물으셨습니다. “다음 서류는 무엇이죠?” 

“고용 증명 서류입니다.” 

대답은 했지만 그 많은 서류의 내용을 짧은 시간 안에 만들어 낸다는 것 역시 불가능해 보였습니다. 

“아 그래요? 걱정마세요, 여기 서류가 있네요”

어느새 목사님 손에는 한 서류 뭉치가 들려져 있었습니다. 

“그게 무엇입니까?” 

“시간이 없으니 자세한 설명은 나중에 하고 어서 여기에 사인을 하세요. 다음 달 채용을 위해 준비해 두었던 서류인데 여기에 준식씨가 이름을 쓰고 사인만 하면 제출하기엔 문제 없을 것입니다.”

 우연이라고 하기엔 놀라운 사실, 3일 가까이 헤매고 헤매도 얻지 못했던 서류들이 불과 10분만에 제 앞에 놓여졌습니다. 

‘어떻게 이럴 수가…..’ 

하지만 놀라워하기엔 여전히 남겨진 서류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미리 만들어져 있는 서류를 이용 할 수 있는 것도 있겠지만 새로이 만들어야 할 서류들도 있었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문제는 학교재단의 레터헤드가 없는 서류는 인정되지 않는다는 것이었습니다. 

연합회 사무실에서 학교용지를 찾는다는 것, 이제는 끝이구나 싶었습니다. 그런데 왠걸 서류 뭉치를 뒤지시던 목사님이 결재를 기다리던 학교 서류 속에서 레터헤드가 있는 빈 용지 두장을 찾아낸 것입니다. 누가 서류를 제출했는데 실수로 빈 용지 두장을 더 제출했던 것이지요. 그것도 제가 딱 필요했던 두 장….. 60세가 훌쩍 넘으신 목사님께선 바쁜 마음으로 컴퓨터 앞에 앉으셨습니다. 띄엄 띄엄한 두 손가락이 키보드에 떨어질 때면 제 눈동자도 같이 떨어지는 것 같았습니다. 정막과 같은 시간이 흐르고 프린트 버튼이 눌려졌습니다.  매큼한 토너 냄새 뒤로 용지가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한장”

그리고 기다렸던 “두 ….장”

갑자기 앞이 깜깜해 졌습니다. 전기가 나간 것입니다. 

몇초만 늦었어도 네시간을 전기 구경을 못할 뻔 했던 것이죠. 

소름이 돋았습니다. 목사님을 비롯해 함께있던 모두가 웃음을 터뜨렸습니다. 아니 이게 무슨 우연일까요? 

웃음이 그치고 살짝 적막이 흐를즈음 연합회 서기 목사님께서 한 뭉치의 서류를 가지고 들어오셨습니다. 

“이 서류들이 필요하다면서요?” 

연합회 사무실로 들어온지 30분, 거짓말 처럼 필요했던 모든 서류가 손 안에 있었습니다. 

세상에! 세상에! 누군가 마치 이런 일이 있을 것을 알고 미리 준비해 놓은 것 처럼 말입니다. 

‘이런 일이 있을 수 있을까? 정말 하나님이 이런 식으로 나를 구해 주시려는 것일까?’

기쁨 반 놀라움 반…..그런데 그 즐거움도 잠시 또 다시 걱정이 시작되었습니다. 

남은 시간은 삼십분, 오는데 한 시간 걸린 거리를 어떻게 시간 내에 돌아갈 것인가 였습니다. 

어떻게든 되겠지 하고 나선 길, 저는 제 눈을 믿을 수가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그렇게 막히던 길이 언제 그랬냐는듯 한산하게 흘러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유인 즉 가야할 길 반대 편에 좌익 단체의 대모가 일어나 경찰에 의해 도로가 통제되고 있었던 것입니다. 

거침 없이 달렸습니다. 신호 한번 걸리지 않고 도착한 외국인 등록소에 섰을때 남은 시간은 5분, 창구에 서서 바라보는 직원의 표정에 당황하는 웃음이 맴돌았습니다. 

사람들은 우연, 혹은 행운이라는 것을 믿습니다. 어쩌면 그래서 너무나 당연스럽게 필연 그리고 불운이라는 것을 그것과 반대되는 개념이라 생각하여 이리저리 연결 시켜버리는 경우가 많은 것 같습니다. 그런데 선교사로서 이런 저런 일들을 겪다보니 그것은 인생의 주제 넘는 착각에 불과하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우연은 없었습니다. 600km 떨어진 곳에 있어야 할 정관을 책장에서 찾고, 고용 서류를 구하고, 레터헤드가 있는 빈 용지 두장, 그리고 프린트가 끝나자 전기가 나가고 대모가 일어나 도로가 통제되어 한시간 걸릴 거리를 25분만에 돌아온 모든 일은 우연이라고 웃어 버리기엔 너무나 촘촘한 사건들이기 때문이지요. 

그런데 이번 사건은 저에게 전과 다른 무언가 새로운 사실을 깨닫게 해주었습니다. 그것은 정작 간절해야할 제가 기도한다고 하나 있는 내내 안될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는 것과 시간이 조여 올 수록 자신도 모르게 한발 빼곤 ‘그럴 줄 알았어’ 라고 이야기 하며 도망치려고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더 놀라운 것은 그렇게 수 많은 놀라운 일들을 보고서도 그 일들을 통해 믿음을 더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더 지독한 의심에 빠지는 자신을 발견 한 것입니다. 

그랬습니다. 서류를 제출하고 출국허가증을 받기까지 4시간, 부끄럽지만 저는 단 한 순간도 웃지 못했고 평안이 없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 모든 것을 어떻게 준비하셨음을 두 눈으로 목도했음에도 손에 땀을 쥐고 조린가슴 숨을 쉬며 걱정에 빠져 있었습니다. 

애굽을 향해 내려졌던 10재앙, 홍해의 사건, 마라의 쓴 물, 시내산에서의 영광, 하늘에서 내려온 생명의 양식 만나….. 모세와 이스라엘 백성은 같은 이적을 바라보았습니다. 그리고 같은 이적을 경험하였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 수록 그들의 모습은 너무나 달라져만 갔습니다. 

“그의 행위를 모세에게, 그의 행사를 이스라엘 자손에게 알리셨도다” (시편 103편 7절)

무엇을 바라봐야 할까요? 아니 무엇을 바라 봤어야 할까요? 

지금까지 굽이 굽이 능력으로 이끄신 하나님이십니까? 아니면 그 사건입니까?

여전히 부끄러운 작은 마음의 저는 이제라도 하나님을 보기 원합니다. 

“여인이 어찌 그 젖 먹는 자식을 잊겠으며 자기 태에서 난 아들을 긍휼히 여기지 않겠느냐 그들은 혹시 잊을지라도 나는 너를 잊지 아니할 것이라. 내가 너를 내 손바닥에 새겼고 너의 성벽이 항상 내 앞에 있나니” (이사야49장 15,16절)

사랑 받는 아들이 아침 밥을 챙겨주신 어머니를 향하여 점심을 주시지 않을 것이라는 걱정을 하지 않는 것처럼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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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그냥 개인적 의견인데

인도에 상주하며 전도회를 하는 김준식 선교사님 있는 곳으로 봉사대 가는 것도 좋을 것 같아요

잠깐 이야기 나눠봤는데 거리는 물론 좀 멀긴하지만  비용은 라오스와 큰 차이는 없을 듯 하네요 ㅋㅋ

암튼 회장단에서 봉사대 장소 정하실 때 그냥 참고 정도 하시라고….

봉사대를 다녀온지 약 3개월이나 지났는데…

봉사대를 다녀온지 약 3개월이나 지났는데…

이제서야 우리 교회에서 봉사대 다녀온 얘기를 안교순서로 하게 되었네요…ㅋㅋㅋ

교회 순서를 위해 만들었는데 

그냥 오랜만에 

봉사대 추억도 느껴보시고

2학기가 반정도 지난 이시점에 지난 여름의 다짐과 결심도 되새겨 보시길 바라면서 올립니다.

(개인적인 순서를 위해 만든거라…저 위주의 편집이 있음을 이해해주시고 보시길 바래요…ㅋㅋㅋ)

모바일 지원은 안되네요…ㅎ


[후기] 천천히 올려봅니다. ㅎ 후기 첫번째(prologue)

prologue(봉사대 가기 전 이야기)

 

이라는 걸 참 오랜만에 써보는 듯하다.

내가 썼던 마지막 글이라면 의학전문대학원에 들어오기 위한 ‘자기소개서’였고 그때 그 자기소개서를 제외한 다른 글을 썼던 기억은 적어도 최근 몇 년은 확실히 없다.

글을 좋아하는 사람도 아니고 그렇다고 자기 일에 대해 소상히 기록에 남기거나 하는 소소한 즐거움을 모르는 그냥 재미없게 사는 사람이기 때문에 추억들을 기록에 남겨 본 적도 거의 없는 것 같다.

후기를 쓰기 전부터 주저리주저리 내 이야기를 쓰는 걸 보니 확실히 글 쓰는 것에 자신이 없나보다사진기록과 재미있는 문체와 감동적인 이야기들로 이루어진 훌륭한 라오스 봉사대 후기들 사이를 비집고 비루한 글을 올리려니 부끄러워서 이런 쓸데없는 말들을 쓰고 있는 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나는 SMA의 신입생!! 귀여운(?) 새내기로서 봉사대 후기 업로드라는 막중한 임무를 띠고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다(하지만 역시 많이 늦었다. 글 쓰는게 참어렵다).

 

 

여러번 많은 사람에게 말해서 이제 또 말하기 조금 부끄럽지만 SMA를 좋아한다. 그냥 좋다. 이 모임이내가 소속되기 전부터 좋았고, 소속될 수 있어서 좋았고, 앞으로는 더 좋아할 것 같다. 그래서 매년 SMA에서 하고 있는 하기 봉사대는 무조건 참석하리라고 애초부터 마음을 단단히 먹고 있었다. 봉사하러 가는 나라가 어디든, 어떤 사람들이 가든지 상관없이 갈 생각이었다. 3월 말쯤 봉사대 신청을 하라는 회장 윤석이의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신청을 했고 바로 입금했다. 봉사대 가기 얼마 전에 상훈이가 나에게 비행기 값이 입금 되지 않았다는 연락을 한 적이 있다. 그 연락을 받았을 때 돈이 문제가 아니라 비행기 예약이 안돼서 봉사대 못 가면 어쩌지 하는 걱정이 먼저 들었다. 나중에 상훈이가 알아보니 입금을 너무 빨리해서 사랑나눔 의사회에서 체크를 못했다고 했다. 41일부터 입금기록을 아무리 살펴봐도 없었는데 나는 3월에 입금을 해 버렸더라고

가고 싶은 마음이 너무 앞서서 오바했나보다….

 

 

봉사대 기간이 721일 부터로 잡혔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아이고난 방학이 20일 부턴데사는 곳도 경상남도 양산 시골인데 봉사대 준비는 어떻게 해야 할까 걱정이 들었다. 하지만 걱정은 걱정일 뿐악명 높은 1학년 1학기 생활을 하고 있는 나는 내 앞가림도 제대로 못하고 허둥지둥 학교생활과 시험에만 매달려 있었다. 그렇게 시간을 보내고 있는데 윤석이가 전화를 하더니 무려 봉사대 신덕부장 맡으란다. 두둥! 아니 이게 왠 날벼락! 늙은 신입생이라고 처음가보는 봉사대에 신덕부장이라니그때 왜 한다고 해가지고는 참부담이었다. 윤석이가 교재는 이번에 어떤 선생님이 해주신다고 한다.

음 그래 ? SMA는 교재도 만들어서 가는구나….

난 몰랐다. 신덕부장이 무슨 일을 하는 건지 알려주지 않은체 그냥 할 수 있겠냐고 물었던건 윤석이가 참 똑똑했던 것 같다. 무서운 녀석그래도 선생님이 도와주신다니 천만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윤석이가 책을 도와주실 선생님은 나의 고등학교 후배일거라고 했고 적극적으로 도와주신다고 했으니 편안한 마음으로 전화를 드렸다.

 첫 통화 후, ~ .... 3년이나 후배라는데 .... 나의 기말고사 일정을 들은 선생님은 .... 교재 만들 시간은 전~혀 없겠다며…(지금은 선생님과 나름(?) 친하니 오해 없으시길 ) 그러곤 교재 내용이 담긴 설교문을 보낼테니 읽어보고 피드백을 달라고 하셨다. 메일을 받아서 9~10개 정도 되는 한글파일 중 처음 열어본 설교문은 A4 40페이지!!!

,...……..길고ㅎㅎㅎ 나름 열심히 시험 공부하는 틈틈이 주말을 이용해 대충대충 정독하며 빨리빨리 심혈을 기울여 시험보기 직전 족보(학명:야마) 보듯이 읽어서 몇몇 코멘트를 드리기는 했으나 사실 이러 저러하여 결국 선생님은 혼자서 모든 소그룹 교재를 다 만들어 주셨다. 무능한 신덕부장의 한계

 

 

라오스 출국 일주일 전 서울에서 헌신회 및 사전 교육을 위한 모임이 있었다. 시험도 끝내지 못한 ‘양산 촌놈’인 나는 당연한 듯 불참을 선언 했지만 헌신회 전날 밤 늦게 새벽까지 헌신회를 준비한다는 윤석이소식을 듣고 미안한 마음이 들어 안식일 예배만 드리고 서울로 날아 올라갔고 사전교육에는 늦었지만 헌신회는 참여할 수 있었다. 가서 보니 훨씬 바쁘게 생활하시는 선생님들과 학생들도 다 참석해 있는 것을 보고 오지 않았다면 안되었겠구나 라는 반성을 하게되었다. 또 봉사대를 통해 처음 만나는 학생들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봉사대에 대한 기대를 한껏 크게 만들 수 있었다. 특히 반가웠던 분이 한분 계셨는데 예전에 우연히 열린 의사회라는 단체를 통해 의료봉사를 같이 갔던 김영선 간호사님이 우리와 같이 봉사대를 가기 위해 와 계신 것이었다. 신기하기도 하고 반갑기도 하고 봉사 경험이 많으신 분과 함께라니 든든한 마음도 들었다.

 

 

무사히 기말고사를 마치는 동안 회장단과 많은 학생들이 봉사대 준비로 수고를 해주었는데 나는 아무것도 해 줄 수 있는게 없었다. 할 수 있었던 건 기도

그리고 드디어 1학기가 마쳤다. 출국전날인 20일에 예정되어있던 예비군 훈련도 미뤘다. 20일부터 21일에 있던 동아리 엠티도 안갔다.

 그리고 대망의 721! 나의 SMA 첫 해외 봉사대를 출발한다.

 

 

To be continued…(비행기는 언제타니….)

4/15 서울에서 한 부산대 스마모임(?) ㅋ

이번주에 개강 후 처음으로 서울에 다녀오면서 다시 학교로 돌아오기 전에 아산병원에서 계신 조상익 선생님을 만나고 왔습니다.
 
학교생활을 약 2달간 한 시점에서 잘하고 있는 것인지 앞으로 어떻게 해야할지 조언을 구하고… 밥도 얻어먹고자 다녀왔죠..ㅋㅋ
 
서울에 올라오면 꼭 한번 들리라는 선배선생님의 압박(?) 때문에 바쁘실 것 같았지만 무조건 찾아 갔습니다. ㅋ
 
이번달은 비뇨기과 턴을 하시면서 당직 근무 중이시더라고요  주말엔 수술이 없어서 비교적 한가하다며 아산병원 내 중국집에서 소고기 탕수육과 야채볶음밥도 사주시고 후식까지 잘 얻어 먹었습니다.
 
선생님의 근황을 전하자면 이미 페북을 통해 칭찬편지를 1회 받으신건 모두 아시겠지만 그사이 또 한번 받으셨다고 하네요… 이러다 칭찬왕 하실듯 ㅋㅋ
 
이런저런 많은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학교 얘기, 교수님 얘기, 선후배 얘기….겨우겨우 학교 적응하고 있는 저에게는 꼭 필요한 말씀들 이었죠..ㅋ
 
마지막으로 아산병원 앞 다리를 건너면서까지 배웅을 해주시며 벚꽃이 핀 나무 아래 벤치에서 대쟁투 책을 펴고 말씀을 해주시고 기도해주셨어요
 
우리를 죄인이라고 판단하실 분은 오직 한분 예수그리스도 이시지만 그분은 우리를 죄인으로 부르기 싫으셔서 아무말씀 없이 십자가 죽음을 받으셨다고… 그분은 우리를 결코 포기하지 않으시는 분이시라고…..
 
나의 정체성을 세상사람들의 판단에 맡기지 말고 하나님께서 맡기자라는 말씀을 해주셨어요
 
새로운 환경에서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들과의 관계를 맺어나가는 가운데에 있는 저에게 정말 필요하고 와닿는 말씀이었습니다.
 
그외에도 정말 좋은 말씀 많이 해주셨는데 다 쓰기엔 너무 많네요..ㅋㅋ
 
조현정 선생님도 계셨음 좋았을텐데 울산 파견중이시라 이번엔 못 만났네요 ㅎ
 
스마를 알게하신 하나님께 다시한번 감사드린 날이었습니다.
 
믿음의 선배가 있다는게 이렇게 든든한 건지 새삼 다시 느꼈네요
 
요즘 중간고사 기간인데 다들 즐겁게 공부하시고 좋은 성적 거두시길 바래요~~~
 
화이팅입니다 ㅋ 
 
마지막으로 인증샷 ㅋㅋㅋ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이번 2012학년 부산대학교 의학전문대학원 수시모집에 합격한 정지혁이라고 합니다.

 

합격 발표가 난 후 바로 SMA에 가입하고 싶어 이렇게 찾아오게 되었습니다.

 

입학하기 전 신앙 안에서 학교생활하시는 선배님, 병원생활 하시는 선생님들도 뵙고 조언도 많이 구하고 싶습니다.

 

또 기회가 된다면 학교생활 하는 동안 최선을 다해 SMA 활동에 참여하고 싶고요..

 

홈페이지 훑어보니 활발히 활동하시는 것 같아 저도 빨리 동참하고 싶은 마음이 생깁니다.

 

사진이나 글에서 반가운 얼굴, 이름들도 눈에 띄네요. 대부분 지금은 졸업을 하신 분들 같아 조금 아쉽지만요..

 

아무튼 앞으로 많은 도움 부탁 드립니다. 잘 이끌어 주십시오.

 

제 연락처는 010-9134-9222 입니다.  가입에 필요한 절차(?) 같은게 있으면 연락 주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