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쓴이 보관물: Jasmine

<후기4 월요일 > 이 사람들이 대체 누구인가?

프롤로그

 

나는 이제 피가 뿜어져 나오는 드라마의 수술 장면을 예전 보다는 길게 지켜 볼 수 있다. 그리고 의료에 관련된 드라마도 넘 재미있다. 가장 큰 변화는 피가 더 이상 공포 스러운것이 아닌 것을 알게 된 것이다. 그리고 좀 더 유식해 졌다는거…. 

‘골든 타임’의 심전도 장면을 보면서 이 사람들이 제대로 촬영을 했나.. 검사하고 있는 나를 보면서 웃었다. 하하하..^^

 

진료 시작 월요일.

 

월요일의 반찬을 담당한 친구들이 아침 식사를 도와 주었다. 만화에서 금방 튀어나올 것만 같은 만화 주인공… 을 닮은 한 학생이ㅋㅋ 어머님이 직접 요리해 주신 반찬의 국물이 새었다서 두통의 반찬을 가져 왔다. 고맙기도 하고, 미안하기도 하고,…… 그러나 그 반찬이 없었다면 우린 슬펐을것이니, 그냥 괜찮냐라는 말로 ‘급’ 마무리 했다.ㅋㅋ

  

전용 오픈카를 타고 병원으로 모였다.

도착하자 기도를 위해 우리는 병동으로 모였다.  하지만 공산주의 국가이기에 조용히 방안에서 문을 닫고 기도했다. 마음이 좀 이상했다. ‘문을 닫고 기도 하다’…… 마음이 갑자기 간절해 졌다. 우리가 만나는 사람들에게 보일 수 있는 것은 오직 우리의 선한 행실 인데 우리의 이기적이고 못된 자아가 불평 불만을 하게 하는 것은 아닌지 슬그머니 겁이 났다.

 

치과에서의 스켈링 보조

짧은 환영식?이 끝나고 치과로 모였다.  상훈이는 아주 명확하고도, 체계적으로 우리가 해야 할 소독에 대한 설명을 해 주었다. 기본 밥상?을 차리고, 소독을 3단계에 거쳐서 하고, 그리고 마취제 주사 셋팅과, 스켈링 팁?을 끼우는 방법 그리고 락스랑 또 하나… 식염수?? (기억이 가물 가물 ㅠㅠㅠ)을 준비해야 하는 것도 알려 주었다. 최근 몇 년간 그렇게 집중해 보기는 처음이였다. 드디어 시작.

 

상훈이의 스켈링 보조를 하게 되었다. 나의 역활은 셕션을 하면서 라이트를 비춘다…

이렇게 간단하면서도 간결한 문장이 실제로는 온몸의 신경과 정신을 집중하지 않으면 할 수 없는 일임을 시작할땐 상상도 못했다.

 

첫 환자는 어린 여학생이였다. 나 처럼 겁이 났는지 쉬이 입을 벌리지 않아서 통역과 우리가 ‘아’를 한 백번 한 것 같다…. 드디어 아이가 입을 별렸다. 상훈이는 실제로는 어땠는지 모르겠지만 평소와 같은 신중하고도 차분한 모습으로 시작했다. 하지만

셕션을 영어 단어로 배운 나…….. 제대로 될 리가 없었다. 거기에 공간 감각력이라고는 없고, 순발력도 없는 내가 상훈이가 보는 공간이 어디인지 도대체가 알 수 가 없었다. 점잖은 목소리로 상훈이가 ‘누나 거기가 아니라 여기요’ 하고 여러번 알려줬다는 것 말고는 첫 환자에 대한 기억이 없다. 두번째 환자도 나는 셕션 팁을 어디에 둬야 하는지 몰라 상훈이를 쳐다 보기 일쑤였고, 나의 라이트는 환자의 치아가 아닌 엉뚱한 상훈이의 손등을 비추기를 여러번 했다. 거기에 피까지…… 셕션팁을 신경쓰니 라이트가 엉뚱한데로 가고, 라이트를 보잖이 상훈이가 뭘 보는지 모르겠고..ㅠㅠ 그렇게 두번째 환자가 끝났다. 땀으로 범벅이 되었다. 땀이 비오듯이 온다는 말은 이를 두고 하는 말이구나… 문자를 직접 몸으로 체험하는 순간이였다. 마음에서 기도가 절로 나왔다.  ‘하나님 셕션과 라이트 두가지 모두를 잘하기는 힘들것 같으니 하나만이라도 잘하게 도와주세요.’ 숙였던 허리를 펴고 주변을 살펴 보았다. 모두들 환자를 보느라 정신이 없었다. 옆에 누가 있었는지 기억이 않나지만.. 아마 소은이였을 것이다. 너무나 진지하고도 열중하고 있는 모습에 용기가 생겼다. 나 뿐만 아니라 여기에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힘든 일이구나… 환자에게도 낯선 사람, 낯선 치과 기구로 치료를 받는 것이….. 심지어 의사 선생님들도 불편한 의자와, 배드때문에….. 이 모든 것들이 모두에게 힘들지만, 모두가 최선을 다하고 자신의 열정을 바치고 있음을  순간 느꼈다.

 

세번째 환자가 왔다. 정신을 똑바로 차리고 차분히 상훈이가 가르쳐 주는 데로 보이지 않는 치아는 라이트로 미러를 비추고 시야가 확보되는 부분은 라이트로 직접, 그리고 셕션은 방해가 되지 않게 반대쪽으로…. 상훈이가 ‘누나 이제 잘하는데요?’ 라는 짧고도 굵직한 멘트를 날렸다. 자신감이 좀 붙었다. 나는 오로지 라이트가 잘 비취지는 것에만 집중을 했다. 그런데 갑자기 누군가 나나를 찾았다. 식사가 왔다며…

 

그때의 기분이란 순간 ‘다행이다’ 이랬다…. ㅋㅋ.  내가 하던 역활을 잠시 다른 사람에게 맡기고, 배달된 식사를 챙기러 갔다. 세팅을 하니, 12시쯤 식구들이 모였다. 맛있게 밥을 먹고 오후가 되자, 나는 다형이와 함께 소독을 하게 되었다.

소독은 스켈링 어시스트보다는 수월했다. 한번에 하나씩 차근차근 하면 되었기 때문에… 그러나 개인적으로 봉사대 최대의 위기를 맡게 되었다.

 

‘악’나즈막한 비명이 나오다 목에 걸렸다. 피가 범벅이 된 발치용 기구들과 치아들이 트레이에 담겨져 왔다. 나도 모르게 속에 메슥거웠다. 나는 액션영화에서 나오는 피 튀기는 장면을 못본다. 때문에 영화관에서 중간에 나오기도 여러번………이유는 잘 알 수 없으나, 아마도 어렸을적 기억때문일 것이다.  내가 9살 때 동생이 큰  차 사고를 당했다. 6살이던 어린 동생의 피가 흥건히 적신 아스팔트를 보면서 인간의 죽음이 무엇인지조차 가늠할 수 없었던 나. 하여 나에게 피는 공포의 대상이자, 나를 무력하게 하는 대상이였다.  그래서였는지, 트레이에 피범벅이 된 기구들을 보자 마자 나도 모르게 어찌할 바를 모르고 얼굴이 찡그려졌다. 얼굴을 돌리니 마스크 너머로 앞에 기다리고 있는 라오스 사람들을 보았다.

 

순간 정신이 번쩍 들었다. 나는 이곳에 개인적인 취향대로 행동하기 위해 온것이 아니다. 나는 이곳에 내가 하고 싶은 일만 하려고 온것이 아니다. 이곳에서 맡고 있는 역활이 나와 맞지 않는다고 얼굴을 찡그리고 다른 이들을 불편하게 하고 있는 내가 너무나 부끄러웠다. 하지만 생리적인 구토 현상을 어떻게 할 것인가…. 조용히 나왔다. 숨을 돌리고 묵묵히 일을 하던 다형이에게 발치 트레이를 맡겼다. 고마워 다형아… ^^ ㅋㅋ 너 아니였음 누나 그때 좌절 했을 것이다. ㅋㅋ 그 뒤로도 피범벅 발치 트레이가 왔지만 다형이가 다 처리해 줬다는 …. (하지만 이 일이 있고 나서 부터는 피가 덜 무서워 졌다. 그래서 지금은 액션 드라마도 쬐끔 잘보게 되었다는)

 

정리 시간이 되었다. 나는 마지막으로 침처럼 생겼지만 솔처럼 생기고 다양한 색깔의 기둥을 가지고 있으면서 번호가 있는… 뭔지를 모르니까. 하여간 손바닥 만한 통에 들어있는 작은 녀석들을 정리하고 있었다. 순간 점심때 먹은 반찬이 생각나서 그 통과 작은 녀석들을 그대로 두고 옆방을 다녔왔다.  그런데 갑자기 ‘탁’ 무엇인가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돌아와 보니 내가 두고온 그 통에 있던 작은 녀석들이 우수수 땅으로 떨어졌다…… 이런……. 나도 모르게 그 통의 주인이라고 생각되어지는 한 분의 얼굴을 살폈다….. 만약 내가 주인이라면 완전…. 화가 났을 것 같았다. 잘은 모르지만 그 물건은 치과 기 구중 중요한 기구인것 같고, 개인 물건인 데다가 땅바닥에 한개도 아니고 몽땅 떨어지다니….뒷 골이 땡길만한 일이였다. 그런데 그 의사 선생님은 그저 웃으시면서 ‘큰일은 큰일이다 (웃음)  잘 찾아서 주워담고, *** (잘모름)에 집어넣어서 소독해라’ 하시면 시크하게 나가셨다… 난 넘 쫄아서 죄송하다고 한 마디도 못하고 대신 현장에 있던 같이 있던 친구가 미안해 하며 치웠다…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이런 일은 정말 엄청난 일이였다는거….ㅠㅠㅠ 이자리를 빌려 그렇게 시크하게 나가주신 선생님 감사해요 그리고 죄송해요. ^^*.

 

 

하루종일 느낀 것이지만, 치과에 ‘치’도 모르는 일반인 우리가 도와주는 것이 그리 탐탁지만은 않았을 것이다. 거기다 아무리 치대라고는 하나 학생들이 도와주는 것이 그리 완벽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스나퍼? 하여간 그것이 무엇인지 되물어보는 나같이 효율없는 봉사자에게 차분히 설명해 줄 수 있고, 기구가 셋팅이 않되었어도 싫은 기색 없이 잘 기다릴 수 있고, 찾고 있는 기구를 못 찾는 우리를 두고, 직접  와서 다른 기구로 바꾸어 가는 치과 의사 선생님이 과연 몇이나 될까?

 

거기에 하루 종일 말이 안통하는 환자를 상대하고, 하루 종일 서서 의사 선생님 어시스트 하면서, 땀을 비오듯이 쏟아내도 밝게 웃는 임 **군. 머리에는 라이트를 한 손에는 셕션을 다른 한 손에는 스켈링 팁을 쥐고 일인 3역을 하는  스마인들을 만드는 원동력이 무엇일까?

 

하루가 끝나가고 침낭에 누었다. 나와 함께 있는 이 사람들의 정체가 궁금해졌다.

과연 이 일주일의 휴가를 반납하고, 하루종일 이 더운 곳에서 고생을 자처하는

나와 함께한 이들…. 이들이 대체 누구일까????

 

 

너무나 인상적이였던 하루는 나에게 큰 질문을 남기며 끝이 나고 있었다.

 

 

후기 3 <초코송이 동산, 쒠꽝>

프롤로그

벌써 한달이 되어간다. 모두들 일상으로 완벽 복귀했나요?

모두들 화이팅 하고 기적이 일상이 되는 삶을 살길!!

 

<쒠꽝에 도착>

으악!! 나는 낮은 목소리로 소리를 질렀다. 와…. 옆에 앉아 있는 총무, 다형이가 참 대~~단해 보였다. 이런 상황에서도 잠을 이렇게 편안하게 잘 수 있다니… 쒠꽝으로 가는 국내선 비행기는 아주 요동을 치고 있었다. 하지만 다행히도 우리가 탄 비행기는 유유히 창 밖으로 보이는 울창한 숲과, 높은 산들을 굽이 굽이 지나쳐 쒠꽝 비행장에 안전히 착륙했다. 휴우…..

 

밖으로 펼쳐진 봉사지의 첫 인상은 시원한 수목원에 들어온듯 했다. 흐린 구름을 차양으로 하여 시원이 부는 바람은 거칠것이 없었다. 우리의 교통수단이 된 소를 싣는 트럭에 모두 올라탔다. 바람을 맞으며 우리가 머무를 곳을 염탐하기에 정신이 팔렸다. 풀위에 자유롭게 있지만 마른 소들, 자기 집인양 느그적 느그적 길위를 걸어가는 가축들,,, 종종 보이는 주민들과 초코송이를 듬성 듬성 박아 놓은 듯한 구릉들을 지나쳐 우리는 1시간 쯤 떨어져 있는 봉사지로 향하였다.

 

비행기를 타기전 나는 라오스말을 하실 수 있다는 한국인 의사선생님이 우리와 함께 있다는 사실을 알고 완전, 대박 놀랬다. 어떻게 라오말을 할 수 있는 거지? 저렇게 지렁이가 지나가다 똥이라도 찔끔 싼 것 같은 글씨들을 어떤 수로 읽고 말을 할 수 있다는 것인지…. 언어에 관심이 있는 나로서 호기심이 급 발동하여 선생님께 어떤 계기가 있었는지 여쭤 보았다. 선생님은 라오스에서 코이카의 활동을 하시면서 라오말을 배우신것이라며 친절히 나의 질문에 대답해 주셨다. 이 때 나는 이미 이 선생님이 대단하신 분인것을 직감적으로 알 수 있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박병원 선생님의 좋은 영향력으로 인하여 지중해성 빈혈에 대한 치료를 할 수 있는 인프라를 구축하고 , 라오스 사람들을 위해 여러가지 좋은 활동을 하신 이야기를 전해 듣고 선생님의 따뜻한 마음에 많은 감동을 받았다.  잠깐 잊어버리기 전에 선생님께 배웠던 라오말을 몇자 적자면… 라오말은 부정문이 ‘버’이다 그래서 나는 않 아파는 ‘커이  버 쨉’이라고 했다. 하지만 질문하는 문장도 ‘버’가 들어가는데 문장 마지막에 쓰는것이라 했다. 따라서 너 아프니 ‘짜오 쨉 버’ 근데 우리는 버쨉, 쨉버 이렇게 두 단어로 모든 대화를 했다는.ㅋㅋㅋ 

 

숙소에 도착하니 이곳 현지 라오공무원들이 청소를 해주시고 계셨다. 숙소는 여러 후기를 통해 소개가 되었으니 패스.. 나는 현정이와 유미와 함께 방을 쓰게 되었다. 의사선생님들!! ㅋㅋ 나는 깜짝 놀랐다. 마냥 학생처럼 옛되어 보이는 두 아가씨가 의사 선생님이라니.. 그것도 이 스마 봉사대를 학생때부터 꾸준히 참석해온 분들이시다는 것을 알고서 스마라는 단체에 굉장한 애착을 가지고 계시는 분들임을 알 수 있었다.

 

숙소를 떠나 우리가 5일동안 활동할 병원으로 향하였다. 이미 라오 현지분들이 나오셔서 우리를 반겨주시고

현지에서 나오신 오이사님도 함께 계셨다. 짧은 소개를 마치고 각자의 자리로 돌아가 자신이 할 일을 점검하는 시간이 되자, 나는 초등학교에 처음온 1학년 학생인냥 무엇을 해야 할지 참 남감하였다. 치과를 가보잖니 모르는 기계 투성이고, 약국을 가보자니, 약사님이 누구인지도 모르고 해서 학교 후배인 강하라 소아과 선생님의 방에 들어갔다. 소와과… 하라선생님은 풍선으로 무엇인가를 만들고 계셨다. 강아지……. 순간 잔 미소가 얼굴에 번졌다. 아이들을 위한 풍선 강아지라니… 어쩜 이런 생각을 했을까? 만약 내가 라오 어린이라면 하라 선생님의 진찰실에 매일 오고 싶어질 것 같았다. 하얀 강아지, 보라 강아지, 그리고 연두 강아지를 만들었다. 함께 했던 예은이는 디자인을 전공한 학생이였던것, 그래서 였는지 창의적인 꽃과 다양한 소품을 풍선으로 만들어 주고, 다은이는 센스 만점으로 우리가 만든 것들을 정돈되게 그러나 매력적이게 배열해 주었다. 아기자기하고, 정성스레이 꾸며진 방을 보며 이곳에 올 아이들이 행복하기를 마음속으로 기도했다.

 

저녁이 되자 우리는 숙소에 모여 예배를 드렸다. 내가 유심히 보아 두었던 기타는 윤석이의 손에 들려져 있었다.

내가 처음 불러보는 찬미들….. 하지만 좋았다. 마음껏 찬미 부르고, 마음껏 기도하고, 마음껏 말씀볼 수 있도록 우리는 모든 걱정과, 눈에 보이지 않는 와이파이의 속박으로 부터 자유했기 때문이다. 찬미가 시작되자 나는 그때까지  마음속에 있던  불안감과 약간의 걱정이 찬미가락과 함께 희석되는 것을 느꼈다. 이런 아름다운 마음을 가지고 찬미하는 사람들과 함께라면 두려울 것이 없을 것 같은 확신이 들었기 때문이였다.

 

지금 이 글을 쓰면서도 한참 멍하게 그때의 그 감격을 되돌아 본다. 유미가 적었던것 처럼 그리고 다른 사람들이

적었던 것처럼 봉사지의 첫 날 저녁예배는 우리에게 5일동안 하나님이 구름기둥과 불기둥으로 우리와 함께 하실 것을 직접 느끼게 해 주었다. 우리의 마음은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을 더 잘 알 수 있다. 누가 나를 미워하는 것 아니면 누가 나를 좋아하는것.. 심지어 가끔은 상대방의 마음을 읽을 수 도 있다. 이심전심이 이를 표현하기 위해 있는 단어 아닌가? 우리는 그랬다. 처음 만난 사람들, 전공이 다르고 배경이 다르고 연령대가 다른 사람들, 심지어 언어가 통하지 않는 사람들… 하지만 우리는 하나님의 성령이 우리의 마음에 역사하시고 우리가 한 마음을 가지고, 하나님 나라의 사명을  위해 최선을 다해 협력 할 수 있음을 말하지 않지만 마음속 깊이, 뜨겁게 느끼고 있었다.

 

진지한 대화로 소그룹이 끝나고 자리에 돌아왔다. 내일 부터 시작되는 본격적인 봉사 일정을 위해 나는 아침 반찬을 확인하고 몇몇의 식구들에게 아침 차리는 것을 도와달라고 부탁하였다. 천명선교사를 다녀온지 10년 만에 다시 자보는 딱딱한  나무 침대와 침낭이 정겨웠다.  휘양찬란한 라스베가스의 푹신한 침대와 깨끗한 시트 보다 나는 첫 날 밤 침낭안에서 훨씬 편안하고 곤히 잠이 들었다. 그렇게 하나님의 보호하시는 날개 밑에 우리 모두가 고요히 잠들고 있었다.

후기 2 <도착 -내 마음의 기쁨이 뭉게 뭉게 피어오르고 >

프롤로그
이렇게 후기를 올리는 가장 큰 이유는 ‘응답하라 1997’이라는 드라마를 보았기 때문이다. ^^과거의 내가 주인공인듯한 착각을 불러 일으키는 이 범상치 않은 드라마.. 공교롭게도 이 드라마의 주인공은 나의 과거의 시간표를 따라 가고 있었다….그 드라마가 후기의 원동력이 되었다는 것은 이 게시판과 어울리진 않지만… 후기를 망설이고 있는 많은 스마인들이여… 2012년 자신이 주인공인 드라마 한편을 글로 남겨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아요.~~~

 

Maxaiy Paradise 도착 (맞나.. 명칭을 적어 두지 않아 종종 틀릴 것 같음)

예배를 드렸다. 조용한 기도에 마음이 차분해 졌다. 어제까지 애들과 씨름하며, 내가 과연 교단에 어울리는 사람인지 고민하던 내가, 공산주의 국가 라오스에, 이렇게 하루만에 와서 선생님도, 그렇다고 학생도 아닌, 그냥 김자연으로 봉사에 참여하게 된것이 너무나 신났다. 하지만 신났다고 집에서처럼 깡총깡총 뛰어다닐 수 도 없고ㅋㅋ 그저 조신하고 얌전하게 있는 듯 없는 듯 하라는 대로 하리라고 다짐,, 또 다짐을 하였다. 단지 3층에 에어컨이 없고 일인 화장실이 없어서 신나는 것이 아주 잠깐 한 3초 멈추긴 했지만.. 이렇게 내 마음 속 아주 깊은 곳에서는 기쁨이 뭉게 뭉게 피어오르고 있었다.

 

네이버 뉴스에 중학교 여선생님?인가가 자신의 직업만족도가 가장 떨어지는 직업이라고 조사된 것을 보고 씁쓸히 웃은 적이 있다. 마음속 한편으로는 그럼 누구는 얼마나 만족하며 살까?라는 답도 모르는 질문으로 그저 위안을 삼았다. 무한 경쟁의 제물이된 한국 사회에서 과연 몇 프로의 사람들이 자신의 일에 만족을 하며, 자신이 잘하는 일을 직업으로 가지고 있으며, 그 일에서 사명감을 가질까? 나는 여러 차례의 시련과 아픔의 결과로 첫번째와 두번째는 그런데로 구색을 맞춘 대답이 있었으나, 사명감면에서는 확실히 답을 할 수 없었다. 하여 아이들과 마찰이 있을때마다.. 확 이거 때려 치우고 작은 학원이나 오픈해서 내가 하고 싶은데로 하고, 짜르고 싶은 학생들 확 확 짜르고 살까? 생각도 수십번이였다. 그런 생각이 아침 저녁으로 머리속에 뱅뱅 돌던 내가 라오스에 도착해 예배를 드리고 건강 강의를 위한 교육을 원이에게 받고 있었다. 이것이야 말로 하나님의 풍성하신 은혜가 아닌가.^^저녁에 건강강의 오티가 있었다. 자궁경부암은 바이러스로 감염이 된다는 놀라운 사실을 알게 되었고, 자궁경부암 예방 백신을 맞아야 한다는 것을 듣고 완전 놀랬다.. 뭐 이래…. 백신 맞고 진짜 암 걸리는 사람은 없는 거임?  있을 수도 있다는…..이거 이런 백신은 맞아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이 시작되었으나… 결론은 내가 나이가 되어서 검사를 받아야 한다나? 하여간 이렇게 결론이 나서 참… 슬펐다………..ㅠㅠ

 

선생님들은 다른 숙소로 가시고 예배가 끝나자 신통방통하게도 과일에 배달되었다. 과일….. 무슨맛인지도 모르는 dragon fruite과 무슨 맛인지는 알지만 이름을 모르는 단감맛 같고 포도 처럼 생긴 과일의 껍질을 수건위에 올려 두었다. 이것이 우리에게 잊지 못할 보 없는?(잘 기억안남)ㅋㅋ 가위바위보를 하게 할지는 그때는 몰랐다. 그저 신기한 과일 맛에 석영이와 민준이가 잘 먹는다면서 깔깔 거리고 좋아했던 기억만 가득할 뿐… 그 밤에 유민이가 손을 베었다는 소식도 들었다. 의사선생님이 계시니 빠르고 신속하게 처리가 되었다는 소식에 모인 사람들이 안도 했지만.. 왠지 유민이가 힘들 듯 했다. 오늘이 첫째날인데 꽤 많이 다쳤다고 하던데,,, 얼마나 아릴까?

 

잠들기 전에 창문 넘어로 보이는 비엔띠안의 저녁 공기를 느껴보려 창문을 열었지만, ㅠㅠ 깜깜해서 잘 보이지도 않고, 뭐랄까 그 느낌이 상상과는 다르게 뭐라 할 수 없는 그저 후덥지근하다는…ㅋㅋ 아무 사고 없이 버스 타고, 비행기 타고, 벤타고 여기까지 오게 하심을 감사하고, 침대에 큰 대자로 누워 나의 역할을 생각해 보았다. 우선 내일 아침은 식사가 매식이니까 패스. 모두들 준비하라고 부탁했던 반찬은 어떻게 했는지 궁금했지만 그 대답이 생각 나기도 전에 후덥지근한 바람 한점이 나를 조용히 잠재웠다.

후기1 –<봉사대.... 나의 마음속에 숨겨진 기쁨을 증폭시켜줘^^.>

프로로그

모두들 안녕하세요?

다들 개강해서 바쁘죠?

저도 기억의 끝트머리를 잡아서 ^^  후기를 올려 볼까 해요. 아니면 다 잊어버릴까봐.. 나이가 있어서 ㅋㅋ 

 

봉사대 출발 전

 

정신 없이 학교에서 아이들과 시름하는 중에 네이버에 올라온 할슈타트를 소개한 글과 고요한 자연을 보듬은 마을을 찍은 평화로운 사진을 보았다. 더운 날씨에 정신까지 통째로 구워 먹을 듯한 아이들의 에너지에 반해, 나는 조용하고도 평화로운 자연을 사랑하는 일인으로 그 사진에 장소로 지친 내 마음을 고요히 달래 줄 여행을 꿈꿨다. 

 

그런던 어느 안식일 함께 교회 다니는 A양이 올 해도 어김없이 스마 봉사대를 간다고 하였다. 와… 봉사대라.. A양이 항상 다녀와서 너무나 행복해하던 봉사대, 나도 그 행복에 참여 할 수 없을까?

의료인도 아니고, 스마회원도 아닌 나도 참석할 수 있을까? 반신 반의 하며 가능성을 타진하였다.

그때는 이미 7월 초, 봉사대는 7월 21일에 출발하고 여러가지 사정이 꼭 긍정적인 것만은 아니라는 회신을 부회장으로 부터 받았다. 하지만, 무슨 이유인지,,, 내 마음은 갈 수 있다라는 느낌이 들었다. ..뭐라 설명할 수 없지만, 그랬다.  나의 마음 한켠엔 여행의 설레임을 또 다른 한켠엔 새로운 사람들과의 만남의 기대감을, 마지막 한켠에 봉사활동를 향한 기대가 차 올랐다. 얼마 후 함께 갈 수 있다는 확답이 왔고, 무엇인가 기여하고 싶은 마음에 식사를 담당하는 역할을 맡기로 하였다. 이런…. 그 일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는 그땐 그땐 몰랐었다. 그저 우리가 먹을 반찬을 잘 가져 오는 것을 체크하는 정도만 생각했었다. 떠나기 전날 금요일.. 일을 마무리하고 자리에 누웠다. 주류가 아닌 비주류의 입장으로, 그리고 나와 전혀 상관없는 의료계 봉사를 과연 잘 할 수 있을까? 스마 부회장이 말하던 염려가 현실로 닥쳐오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하지만,, 뭔가 답을 내기도 전에 스르륵 잠이 들었다.

 

공항에서의 만남

 

무엇인가 첫 만남은 항상 이렇게 설레이나 보다. 나도 10일 동안 함께 할 식구들을 만나는 시간이 설레였다. 3시쯤 되어서 공항에 도착했다는 카톡이 떴다. 와….. 숨을 크게 한 번 들이쉬고 모임 장소로 나아갔다.  D앞에 모여 있는 사람들이 우리 일행인듯 했다. 머리 때문에?ㅋㅋ (죄송합니다 선생님) 나이가 많게 보이시는 하지만 피부는 20대^^보다 더 좋아 보이시는 한 분과,  꼽슬이고 어리신 분이 이리 저리 지시를 하고 계셨다. 학생들만 가는 것이 아니였나???라는 생각을 하며 그 분을 유심히 보았다. 이 분들이 책임자이시구나.. 인사를 드리고 싶었지만….하지만,,,, 도통 누구에게 인사를 해야 할지 알 수 가 없었다. 모두들 카톡으로 이야기를 나눈 친구들인데, 그 때 머리가 꼽슬인 친구( 윤석ㅋㅋ)가 다행히도 인사를 해 주었다. 와… 그래 반가워 조용하고 최대한 조신하게 인사를 했다. ㅋㅋ 가만히 서 있으니 뭔가 도회적이고 세련된  한 학생이 와서 자연이 누나이시죠.. 라며 모기 방지용 팔찌를 건네주었다. 그 친구가 그 땐 인천공항이여서 그렇게 보였다..^^  펼쳐진 짐들에 눈길을 주었다. 아니 어쩜 이렇게 짐이 많은지…. 그래서 자신의 짐은 한개만 가져오라고 한거구나… 그 때 까지도 나는 내가 학생때 다니던 봉사대에 그 범위가 한정되어 있었다. 앞으로 펼쳐질 스펙타클한 5일의 활동에 대해서 무지했다. 아니 상상조차 할 수 가 없었다… 

 

  그 짐들 중 까만 가죽 케이스에 담인 기타를 보았다… 기타…누군가 기타를 잘 치는 사람이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며 누구의 기타일지 주시하였다. 갑자기 구원이라고 소개한 구김이 없는 미소를 가진 친구가 다정하게 자연이 언니시죠라고 인사를 건네주었다. 얼마나 감사하던지….. 그리고 많은 친구들과 인사를 하고 통 성명을 하였다. 그렇게 하며 자연스럽게 일행들과 섞이게 되고 비행기에 탑승하고 그렇게 라오스로 향하였다.

 

10일동안 과연 얼마나  많은 것이 바뀔  수 있을까? 라오스로 향하는 비행기 안에서 2년전이 떠 올랐다. 3개월 동안 혼자 다니던 여행에 재미를 못 느낀 나는 돌아오는 비행기에서 절대로 혼자가는 여행을 다신 가지 않겠다는 다짐을 했었더란다. 30여명이 넘는 그리고 내가 아는 사람은 3명밖에 없는 여행. 그리고 20대가 주류인 이 그룹에 내가 잘 적응 할 수 있을지는 그 때까지는 물음표였다..

그렇게 내 인생의 7번째 봉사대가 시작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