헐 ㅠㅠ

올해는 후기가 어마어마하네요 ㅋㅋㅋ
ㅜㅜ 후기보니까 더 부럽다 ㅜㅜㅜ
지금이라도 다시 가고 싶네요!!!

선생님이 되어 쓰는 후기3 – 봉사 첫날

아침에 다 같이 모여 예배를 드리고 밥을 느긋하게 먹고 있다 시간을 보니 시간이 ㅎㄷㄷ …
회장을 제촉하고.. 밖에서 기다리는데 다들 꾸물거리는 거다.
오늘 높은 분들이 오셔서 세레모니후 바로 진료를 시작한다는데 높은분들이 왔는데 우리가 도착 안해있으면 어쩌지ㅜㅜ 하는 생각에 근데 들어가서 진료준비를 해야하는데 어쩌지 란 생각에 제촉을 하는데 잘 모이지 않아 소리를 좀(?) 세고 거칠게 ㅋㅋ 내었다.
난 역시 이런 캐릭터인가.. 학생때나 선생때나 고쳐지지 않는구나… 하며 도착한 병원에선 사람들이 많이 모여있고 선생님들은 도착해있었다.
그리고 다행이 높은 분들이 오지 않아 먼저 기도를 하고 준비를 시작했다. 
기다리던 사람들을 보는데 그제서야 진짜 봉사대를 왔다는 것을 실감했다.
높은 분이 와서 세레모니를 하고 난뒤 진료를 시작했다. 

나는 통역이 없어서란 핑계하에 진료를 하지 않고 산부인과 진료보조를 했다. 하지만 안내가 한명도 없이 돌아가는 터라 바깥 상황이 너무 복잡해 져서 진료보조보다는 거의 돌아다니며 안내와 쉴세없이 찍어대는 심전도를 정리했다. 
아~ 학생같애~ ㅋㅋ
진료가 부담이 되던 나에겐 통역이 없다는 것이 다행이었다. ㅎㅎㅎㅎ

아침에 거의 안내역활을 하고 있는데 진료기다리는 곳에 앉아 있던 여자가 자꾸 나에게 대화를 시도하는데 이야기는 안통하는데 바디랭귀지로 보니 아기를 가지고 있고 머리가 아프다라는 말을 하는 듯했다.
그러나 진료차트를 가지고 있지 않고 있어서 어떻게 해야할 지도 모르겠고 통역이 없어서 말도 안되고 해서 그냥 뒀는데 조금 지나서 그 여자가 쓰러지는 거다.
정말 놀래서 모두들 부르고 난리를 쳤는데 갑자기 임신중독증이 생각나면서 그걸 캐치못한 내 자신이 넘 부끄러워지는거다.
정말 내가 산부인과를 지원할 자격이 되나 싶기도 하고. 임신중독증이 아니라서 정말 다행이기도 했지만, 이었음 정말 큰일날뻔 했다. 

그래도 아무 일 없이 첫날의 진료가 끝났다. 물론 처음으로 도입한 SEMR이 중간에 중단되는 일도 있었지만 중간에 큰 혼선이 빚어지지 않아서 다행이었다.

정리가 다 끝나고 저녁을 먹으러 갔다.
저녁을 먹으며 피드백을 하는데 정말 봉사대중 이번처럼 깔끔한 피드백을 본 적이 없는 것 같다,
너무 일찍끝나서….. 우리때는 항상 오래걸려서 사람들이 봉사대에서 봉사는 안하고 피드백만 하는 거 아니냐고 할 정도였는데… 각 파트별로 자기네 끼리 이야기 하고  다른 파트에서 알아야 할 점만 간단하게 하니 정말 좋은 것 같았다.
일찍 끝나기도 하고.

그 후에 현지에서 보건 행정으로 일하시는 분의 강의를 들었는데….. 음…. 결론적으로 나는 그 파트는…… 생략하도록 하겠음…..

첫날이라 늦게 끝날 것으로 예상해서 소그룹을 안하기로 생각했는데 생각보다 일찍 끝났는데 시기가 애매해서… 갑자기 현정언니에게 부탁을 했다.

갑작스럽게 그렇게 되었지만 현정언니의 말씀으로 우리는 은혜를 받을 수 있었다.

막판에 밀려서 보진 못했지만 수년간 간질을 앓은 소녀와 그 부모에게 할 수 있는 것은 기도밖에 없음에 기도를 해준 이야기…. 왜 자꾸 난 기도가 안되는지…

예배가 끝난후에도 계속되는 기타소리에 여러명이 둘러 앉아 찬양을 드렸다. 나는  내가 그전에 넣어달라고 부탁한 찬양인 ‘주님은 산같아서’를 부르는데 자꾸 나의 산이 되시는 주님이 생각나서 같이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리고 그 후에도 찬양과 간증이 같이 있는 시간을 보낸후 헤어져 각자 자리로 돌아갔다. 

방으로 돌아왔는데 너넨 어떻게 이렇게 쌩쌩하냐며 자긴 힘들어서 그 좋은 시간을 못 즐기고 돌아오게 되어 너무 안타깝다는 한숨어린 소리에….. 같이 늙어가는 처지에 우리도 힘들다는 소릴 하며 그래도 이래야 이런 곳에서 잠 잘든다는 생각을 하며 잠자리에 누었다.

후기 3 <초코송이 동산, 쒠꽝>

프롤로그

벌써 한달이 되어간다. 모두들 일상으로 완벽 복귀했나요?

모두들 화이팅 하고 기적이 일상이 되는 삶을 살길!!

 

<쒠꽝에 도착>

으악!! 나는 낮은 목소리로 소리를 질렀다. 와…. 옆에 앉아 있는 총무, 다형이가 참 대~~단해 보였다. 이런 상황에서도 잠을 이렇게 편안하게 잘 수 있다니… 쒠꽝으로 가는 국내선 비행기는 아주 요동을 치고 있었다. 하지만 다행히도 우리가 탄 비행기는 유유히 창 밖으로 보이는 울창한 숲과, 높은 산들을 굽이 굽이 지나쳐 쒠꽝 비행장에 안전히 착륙했다. 휴우…..

 

밖으로 펼쳐진 봉사지의 첫 인상은 시원한 수목원에 들어온듯 했다. 흐린 구름을 차양으로 하여 시원이 부는 바람은 거칠것이 없었다. 우리의 교통수단이 된 소를 싣는 트럭에 모두 올라탔다. 바람을 맞으며 우리가 머무를 곳을 염탐하기에 정신이 팔렸다. 풀위에 자유롭게 있지만 마른 소들, 자기 집인양 느그적 느그적 길위를 걸어가는 가축들,,, 종종 보이는 주민들과 초코송이를 듬성 듬성 박아 놓은 듯한 구릉들을 지나쳐 우리는 1시간 쯤 떨어져 있는 봉사지로 향하였다.

 

비행기를 타기전 나는 라오스말을 하실 수 있다는 한국인 의사선생님이 우리와 함께 있다는 사실을 알고 완전, 대박 놀랬다. 어떻게 라오말을 할 수 있는 거지? 저렇게 지렁이가 지나가다 똥이라도 찔끔 싼 것 같은 글씨들을 어떤 수로 읽고 말을 할 수 있다는 것인지…. 언어에 관심이 있는 나로서 호기심이 급 발동하여 선생님께 어떤 계기가 있었는지 여쭤 보았다. 선생님은 라오스에서 코이카의 활동을 하시면서 라오말을 배우신것이라며 친절히 나의 질문에 대답해 주셨다. 이 때 나는 이미 이 선생님이 대단하신 분인것을 직감적으로 알 수 있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박병원 선생님의 좋은 영향력으로 인하여 지중해성 빈혈에 대한 치료를 할 수 있는 인프라를 구축하고 , 라오스 사람들을 위해 여러가지 좋은 활동을 하신 이야기를 전해 듣고 선생님의 따뜻한 마음에 많은 감동을 받았다.  잠깐 잊어버리기 전에 선생님께 배웠던 라오말을 몇자 적자면… 라오말은 부정문이 ‘버’이다 그래서 나는 않 아파는 ‘커이  버 쨉’이라고 했다. 하지만 질문하는 문장도 ‘버’가 들어가는데 문장 마지막에 쓰는것이라 했다. 따라서 너 아프니 ‘짜오 쨉 버’ 근데 우리는 버쨉, 쨉버 이렇게 두 단어로 모든 대화를 했다는.ㅋㅋㅋ 

 

숙소에 도착하니 이곳 현지 라오공무원들이 청소를 해주시고 계셨다. 숙소는 여러 후기를 통해 소개가 되었으니 패스.. 나는 현정이와 유미와 함께 방을 쓰게 되었다. 의사선생님들!! ㅋㅋ 나는 깜짝 놀랐다. 마냥 학생처럼 옛되어 보이는 두 아가씨가 의사 선생님이라니.. 그것도 이 스마 봉사대를 학생때부터 꾸준히 참석해온 분들이시다는 것을 알고서 스마라는 단체에 굉장한 애착을 가지고 계시는 분들임을 알 수 있었다.

 

숙소를 떠나 우리가 5일동안 활동할 병원으로 향하였다. 이미 라오 현지분들이 나오셔서 우리를 반겨주시고

현지에서 나오신 오이사님도 함께 계셨다. 짧은 소개를 마치고 각자의 자리로 돌아가 자신이 할 일을 점검하는 시간이 되자, 나는 초등학교에 처음온 1학년 학생인냥 무엇을 해야 할지 참 남감하였다. 치과를 가보잖니 모르는 기계 투성이고, 약국을 가보자니, 약사님이 누구인지도 모르고 해서 학교 후배인 강하라 소아과 선생님의 방에 들어갔다. 소와과… 하라선생님은 풍선으로 무엇인가를 만들고 계셨다. 강아지……. 순간 잔 미소가 얼굴에 번졌다. 아이들을 위한 풍선 강아지라니… 어쩜 이런 생각을 했을까? 만약 내가 라오 어린이라면 하라 선생님의 진찰실에 매일 오고 싶어질 것 같았다. 하얀 강아지, 보라 강아지, 그리고 연두 강아지를 만들었다. 함께 했던 예은이는 디자인을 전공한 학생이였던것, 그래서 였는지 창의적인 꽃과 다양한 소품을 풍선으로 만들어 주고, 다은이는 센스 만점으로 우리가 만든 것들을 정돈되게 그러나 매력적이게 배열해 주었다. 아기자기하고, 정성스레이 꾸며진 방을 보며 이곳에 올 아이들이 행복하기를 마음속으로 기도했다.

 

저녁이 되자 우리는 숙소에 모여 예배를 드렸다. 내가 유심히 보아 두었던 기타는 윤석이의 손에 들려져 있었다.

내가 처음 불러보는 찬미들….. 하지만 좋았다. 마음껏 찬미 부르고, 마음껏 기도하고, 마음껏 말씀볼 수 있도록 우리는 모든 걱정과, 눈에 보이지 않는 와이파이의 속박으로 부터 자유했기 때문이다. 찬미가 시작되자 나는 그때까지  마음속에 있던  불안감과 약간의 걱정이 찬미가락과 함께 희석되는 것을 느꼈다. 이런 아름다운 마음을 가지고 찬미하는 사람들과 함께라면 두려울 것이 없을 것 같은 확신이 들었기 때문이였다.

 

지금 이 글을 쓰면서도 한참 멍하게 그때의 그 감격을 되돌아 본다. 유미가 적었던것 처럼 그리고 다른 사람들이

적었던 것처럼 봉사지의 첫 날 저녁예배는 우리에게 5일동안 하나님이 구름기둥과 불기둥으로 우리와 함께 하실 것을 직접 느끼게 해 주었다. 우리의 마음은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을 더 잘 알 수 있다. 누가 나를 미워하는 것 아니면 누가 나를 좋아하는것.. 심지어 가끔은 상대방의 마음을 읽을 수 도 있다. 이심전심이 이를 표현하기 위해 있는 단어 아닌가? 우리는 그랬다. 처음 만난 사람들, 전공이 다르고 배경이 다르고 연령대가 다른 사람들, 심지어 언어가 통하지 않는 사람들… 하지만 우리는 하나님의 성령이 우리의 마음에 역사하시고 우리가 한 마음을 가지고, 하나님 나라의 사명을  위해 최선을 다해 협력 할 수 있음을 말하지 않지만 마음속 깊이, 뜨겁게 느끼고 있었다.

 

진지한 대화로 소그룹이 끝나고 자리에 돌아왔다. 내일 부터 시작되는 본격적인 봉사 일정을 위해 나는 아침 반찬을 확인하고 몇몇의 식구들에게 아침 차리는 것을 도와달라고 부탁하였다. 천명선교사를 다녀온지 10년 만에 다시 자보는 딱딱한  나무 침대와 침낭이 정겨웠다.  휘양찬란한 라스베가스의 푹신한 침대와 깨끗한 시트 보다 나는 첫 날 밤 침낭안에서 훨씬 편안하고 곤히 잠이 들었다. 그렇게 하나님의 보호하시는 날개 밑에 우리 모두가 고요히 잠들고 있었다.

안녕하세요. 박병원입니다. ^^ 라오스에서 소식이 왔습니다. 결론을 말씀드리면 여러분의 기도와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아이들이 무사히 치료를 받았다고 한네요. 목에 Mass lesion이 있었던 아이는 수술전 airway obstruction으로 respiratory arrest까지 있었다고 합니다. 중앙대학교 흉부외과 선생님이 오셔서 아동병원 코이카 흉부외과 정윤상 선생님과 함께 성공적으로 수술하였다고 합니다. 코이카 소아과 선생님

안녕하세요. 박병원입니다. ^^
라오스에서 소식이 왔습니다.

결론을 말씀드리면 여러분의 기도와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아이들이 무사히 치료를 받았다고 한네요.

목에 Mass lesion이 있었던 아이는 수술전 airway obstruction으로 respiratory arrest까지 있었다고 합니다.
중앙대학교 흉부외과 선생님이 오셔서 아동병원 코이카 흉부외과 정윤상 선생님과 함께 성공적으로 수술하였다고 합니다. 코이카 소아과 선생님이 3일을 밤새면서 치료한 끝에 좋아졌다고 들었습니다.

지중해 빈혈아이는 무사히 비장 절제술을 잘 받고 퇴원하였다고 하네요.

자세한 소식이나 사진은 추후에 알려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모두 잘 지내시고 건강하세요 ^^

후기 2 <도착 -내 마음의 기쁨이 뭉게 뭉게 피어오르고 >

프롤로그
이렇게 후기를 올리는 가장 큰 이유는 ‘응답하라 1997’이라는 드라마를 보았기 때문이다. ^^과거의 내가 주인공인듯한 착각을 불러 일으키는 이 범상치 않은 드라마.. 공교롭게도 이 드라마의 주인공은 나의 과거의 시간표를 따라 가고 있었다….그 드라마가 후기의 원동력이 되었다는 것은 이 게시판과 어울리진 않지만… 후기를 망설이고 있는 많은 스마인들이여… 2012년 자신이 주인공인 드라마 한편을 글로 남겨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아요.~~~

 

Maxaiy Paradise 도착 (맞나.. 명칭을 적어 두지 않아 종종 틀릴 것 같음)

예배를 드렸다. 조용한 기도에 마음이 차분해 졌다. 어제까지 애들과 씨름하며, 내가 과연 교단에 어울리는 사람인지 고민하던 내가, 공산주의 국가 라오스에, 이렇게 하루만에 와서 선생님도, 그렇다고 학생도 아닌, 그냥 김자연으로 봉사에 참여하게 된것이 너무나 신났다. 하지만 신났다고 집에서처럼 깡총깡총 뛰어다닐 수 도 없고ㅋㅋ 그저 조신하고 얌전하게 있는 듯 없는 듯 하라는 대로 하리라고 다짐,, 또 다짐을 하였다. 단지 3층에 에어컨이 없고 일인 화장실이 없어서 신나는 것이 아주 잠깐 한 3초 멈추긴 했지만.. 이렇게 내 마음 속 아주 깊은 곳에서는 기쁨이 뭉게 뭉게 피어오르고 있었다.

 

네이버 뉴스에 중학교 여선생님?인가가 자신의 직업만족도가 가장 떨어지는 직업이라고 조사된 것을 보고 씁쓸히 웃은 적이 있다. 마음속 한편으로는 그럼 누구는 얼마나 만족하며 살까?라는 답도 모르는 질문으로 그저 위안을 삼았다. 무한 경쟁의 제물이된 한국 사회에서 과연 몇 프로의 사람들이 자신의 일에 만족을 하며, 자신이 잘하는 일을 직업으로 가지고 있으며, 그 일에서 사명감을 가질까? 나는 여러 차례의 시련과 아픔의 결과로 첫번째와 두번째는 그런데로 구색을 맞춘 대답이 있었으나, 사명감면에서는 확실히 답을 할 수 없었다. 하여 아이들과 마찰이 있을때마다.. 확 이거 때려 치우고 작은 학원이나 오픈해서 내가 하고 싶은데로 하고, 짜르고 싶은 학생들 확 확 짜르고 살까? 생각도 수십번이였다. 그런 생각이 아침 저녁으로 머리속에 뱅뱅 돌던 내가 라오스에 도착해 예배를 드리고 건강 강의를 위한 교육을 원이에게 받고 있었다. 이것이야 말로 하나님의 풍성하신 은혜가 아닌가.^^저녁에 건강강의 오티가 있었다. 자궁경부암은 바이러스로 감염이 된다는 놀라운 사실을 알게 되었고, 자궁경부암 예방 백신을 맞아야 한다는 것을 듣고 완전 놀랬다.. 뭐 이래…. 백신 맞고 진짜 암 걸리는 사람은 없는 거임?  있을 수도 있다는…..이거 이런 백신은 맞아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이 시작되었으나… 결론은 내가 나이가 되어서 검사를 받아야 한다나? 하여간 이렇게 결론이 나서 참… 슬펐다………..ㅠㅠ

 

선생님들은 다른 숙소로 가시고 예배가 끝나자 신통방통하게도 과일에 배달되었다. 과일….. 무슨맛인지도 모르는 dragon fruite과 무슨 맛인지는 알지만 이름을 모르는 단감맛 같고 포도 처럼 생긴 과일의 껍질을 수건위에 올려 두었다. 이것이 우리에게 잊지 못할 보 없는?(잘 기억안남)ㅋㅋ 가위바위보를 하게 할지는 그때는 몰랐다. 그저 신기한 과일 맛에 석영이와 민준이가 잘 먹는다면서 깔깔 거리고 좋아했던 기억만 가득할 뿐… 그 밤에 유민이가 손을 베었다는 소식도 들었다. 의사선생님이 계시니 빠르고 신속하게 처리가 되었다는 소식에 모인 사람들이 안도 했지만.. 왠지 유민이가 힘들 듯 했다. 오늘이 첫째날인데 꽤 많이 다쳤다고 하던데,,, 얼마나 아릴까?

 

잠들기 전에 창문 넘어로 보이는 비엔띠안의 저녁 공기를 느껴보려 창문을 열었지만, ㅠㅠ 깜깜해서 잘 보이지도 않고, 뭐랄까 그 느낌이 상상과는 다르게 뭐라 할 수 없는 그저 후덥지근하다는…ㅋㅋ 아무 사고 없이 버스 타고, 비행기 타고, 벤타고 여기까지 오게 하심을 감사하고, 침대에 큰 대자로 누워 나의 역할을 생각해 보았다. 우선 내일 아침은 식사가 매식이니까 패스. 모두들 준비하라고 부탁했던 반찬은 어떻게 했는지 궁금했지만 그 대답이 생각 나기도 전에 후덥지근한 바람 한점이 나를 조용히 잠재웠다.

후기1 –<봉사대.... 나의 마음속에 숨겨진 기쁨을 증폭시켜줘^^.>

프로로그

모두들 안녕하세요?

다들 개강해서 바쁘죠?

저도 기억의 끝트머리를 잡아서 ^^  후기를 올려 볼까 해요. 아니면 다 잊어버릴까봐.. 나이가 있어서 ㅋㅋ 

 

봉사대 출발 전

 

정신 없이 학교에서 아이들과 시름하는 중에 네이버에 올라온 할슈타트를 소개한 글과 고요한 자연을 보듬은 마을을 찍은 평화로운 사진을 보았다. 더운 날씨에 정신까지 통째로 구워 먹을 듯한 아이들의 에너지에 반해, 나는 조용하고도 평화로운 자연을 사랑하는 일인으로 그 사진에 장소로 지친 내 마음을 고요히 달래 줄 여행을 꿈꿨다. 

 

그런던 어느 안식일 함께 교회 다니는 A양이 올 해도 어김없이 스마 봉사대를 간다고 하였다. 와… 봉사대라.. A양이 항상 다녀와서 너무나 행복해하던 봉사대, 나도 그 행복에 참여 할 수 없을까?

의료인도 아니고, 스마회원도 아닌 나도 참석할 수 있을까? 반신 반의 하며 가능성을 타진하였다.

그때는 이미 7월 초, 봉사대는 7월 21일에 출발하고 여러가지 사정이 꼭 긍정적인 것만은 아니라는 회신을 부회장으로 부터 받았다. 하지만, 무슨 이유인지,,, 내 마음은 갈 수 있다라는 느낌이 들었다. ..뭐라 설명할 수 없지만, 그랬다.  나의 마음 한켠엔 여행의 설레임을 또 다른 한켠엔 새로운 사람들과의 만남의 기대감을, 마지막 한켠에 봉사활동를 향한 기대가 차 올랐다. 얼마 후 함께 갈 수 있다는 확답이 왔고, 무엇인가 기여하고 싶은 마음에 식사를 담당하는 역할을 맡기로 하였다. 이런…. 그 일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는 그땐 그땐 몰랐었다. 그저 우리가 먹을 반찬을 잘 가져 오는 것을 체크하는 정도만 생각했었다. 떠나기 전날 금요일.. 일을 마무리하고 자리에 누웠다. 주류가 아닌 비주류의 입장으로, 그리고 나와 전혀 상관없는 의료계 봉사를 과연 잘 할 수 있을까? 스마 부회장이 말하던 염려가 현실로 닥쳐오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하지만,, 뭔가 답을 내기도 전에 스르륵 잠이 들었다.

 

공항에서의 만남

 

무엇인가 첫 만남은 항상 이렇게 설레이나 보다. 나도 10일 동안 함께 할 식구들을 만나는 시간이 설레였다. 3시쯤 되어서 공항에 도착했다는 카톡이 떴다. 와….. 숨을 크게 한 번 들이쉬고 모임 장소로 나아갔다.  D앞에 모여 있는 사람들이 우리 일행인듯 했다. 머리 때문에?ㅋㅋ (죄송합니다 선생님) 나이가 많게 보이시는 하지만 피부는 20대^^보다 더 좋아 보이시는 한 분과,  꼽슬이고 어리신 분이 이리 저리 지시를 하고 계셨다. 학생들만 가는 것이 아니였나???라는 생각을 하며 그 분을 유심히 보았다. 이 분들이 책임자이시구나.. 인사를 드리고 싶었지만….하지만,,,, 도통 누구에게 인사를 해야 할지 알 수 가 없었다. 모두들 카톡으로 이야기를 나눈 친구들인데, 그 때 머리가 꼽슬인 친구( 윤석ㅋㅋ)가 다행히도 인사를 해 주었다. 와… 그래 반가워 조용하고 최대한 조신하게 인사를 했다. ㅋㅋ 가만히 서 있으니 뭔가 도회적이고 세련된  한 학생이 와서 자연이 누나이시죠.. 라며 모기 방지용 팔찌를 건네주었다. 그 친구가 그 땐 인천공항이여서 그렇게 보였다..^^  펼쳐진 짐들에 눈길을 주었다. 아니 어쩜 이렇게 짐이 많은지…. 그래서 자신의 짐은 한개만 가져오라고 한거구나… 그 때 까지도 나는 내가 학생때 다니던 봉사대에 그 범위가 한정되어 있었다. 앞으로 펼쳐질 스펙타클한 5일의 활동에 대해서 무지했다. 아니 상상조차 할 수 가 없었다… 

 

  그 짐들 중 까만 가죽 케이스에 담인 기타를 보았다… 기타…누군가 기타를 잘 치는 사람이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며 누구의 기타일지 주시하였다. 갑자기 구원이라고 소개한 구김이 없는 미소를 가진 친구가 다정하게 자연이 언니시죠라고 인사를 건네주었다. 얼마나 감사하던지….. 그리고 많은 친구들과 인사를 하고 통 성명을 하였다. 그렇게 하며 자연스럽게 일행들과 섞이게 되고 비행기에 탑승하고 그렇게 라오스로 향하였다.

 

10일동안 과연 얼마나  많은 것이 바뀔  수 있을까? 라오스로 향하는 비행기 안에서 2년전이 떠 올랐다. 3개월 동안 혼자 다니던 여행에 재미를 못 느낀 나는 돌아오는 비행기에서 절대로 혼자가는 여행을 다신 가지 않겠다는 다짐을 했었더란다. 30여명이 넘는 그리고 내가 아는 사람은 3명밖에 없는 여행. 그리고 20대가 주류인 이 그룹에 내가 잘 적응 할 수 있을지는 그 때까지는 물음표였다..

그렇게 내 인생의 7번째 봉사대가 시작되고 있었다.

<후기> 여러분은 제 기도의 응답이십니다.

피부색이 다르고 인종이 다른 학생들과 지난 일년간 의대라는 목표를 위해 달려왔습니다. 캐나다는 평화로운 나라이지만 저같이 의대가 보장되지 않은 프리메드 학생들에겐 그저 평화로워 보이는 전쟁터나
다름없습니다.
 이런 전쟁 같은 경쟁에서 이기려면 남다른
특별한 무기가 필요한데 저는 영어도, 실력도, 지식도 남들처럼
특별히 자랑할 만한 것이 없었습니다.
 제 자신에겐 자랑할 것이 없었지만 제가 믿는 하나님이야 말로 제가 자랑할 수 있는 유일한 무기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저의 기도를 때마다 들어주셨고 매 시험마다 기적의 선물들을 주셨습니다. 이렇게 하나님께서는 저를 지난 일년간 불기둥과 구름기둥으로 이끌어 주셨습니다. 이번 여름에도 그러하셨습니다. 이번 여름, 저는 시간을 가장 가치 있고 보람차게 보낼 수 있는
봉사활동을 찾고 있었습니다. 의대에 진학하기 위해서는 공부뿐 아니라 많은 봉사활동이 필요하기 때문에
이번 여름방학은 어떤 좋은 봉사활동을 찾느냐가 관건이었습니다.
 중요한 만큼 모색도 봄부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예상외로 쉽지
않았습니다. 대부분 봉사기간이 맞지 않았고 의사나 의대생도 아닌 저를 받아주는 해외의료봉사대는 믿기
어려울 만큼 없었습니다. 모든 일이 안 풀리고 괴로워 땅바닥에
주저앉았을 때 친구가 해준 말이 생각났습니다. “When life
knocks you down on your knees, remember that you’re in the perfect position to
pray.”
 

제 기도는 곧 응답 받았습니다. 역시 하나님이십니다! 며칠 후 길을 걷다 문득 초등학교 친구 석형이가 생각났고 석형이를 통해 우연히 SMA를 알게 되었습니다^^. 석형이를
초등학교 때 이후로 딱 한번밖에 본 적이 없는데 그런 친구를 통해 이렇게 SMA를 만나다니
 이런 우연이 어딨습니까. 석형이도 고맙고 하나님도 고맙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우연이 아닌 필연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기도응답이었으니까요^^. 이렇게 응답 받은 SMA를 빨리 만나고 싶었습니다. 그렇게 기다리던 7월이 어느새 오고 저는 드디어 SMA라는 응답의 선물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그런걸까요^^ 7월의 마지막 일주일 동안 저는 생일선물 받은 꼬마마냥 행복했습니다ㅎㅎ.
처음에는 선물이 단지 의대진학을 위한 해외의료봉사시간이라 생각했는데 제가 받은 진짜 선물은 그
이상의 것이라는 것을 일주일 동안 알게 되었습니다.
라오스라는 더운 나라에서 봉사하느라 땀을 비 오듯 흘리시면서도 먼저 환자의 땀부터 닦아주시려는 SMA 학생들… 환자의 상처의
아픔을 함께 느끼며 상처에서 나오는 피를 닦아주시는 의사 선생님들… 라오스에서 만난 환자를 보면서 안타까워 울고 감사해서 우는 지난 일주일의 눈물들…
, , 눈물.
세가지 고결한 액체들의 결정체 속에 비추어지는 모습은 바로 SMA의 모습이었습니다. 제가 받은 진짜 선물은 이 고결한 액체들이 합쳐져서 만든 하나의 물방울입니다.
이 물방울 안에 우리 봉사대의 힘들었던 시간, 행복했던 시간, 수소결합보다 더 끈끈한 우정을 나눈 시간이 다 담겨있네요.

“치과에서 서 있느라 다리 아프고 약국에서 알약 찾느라 머리 아프고 의과에서 환자 다루느라 힘들었던 시간, 힘든 봉사 끝내고 식당에 가서 오랜만에 팍취가 들어가지 않은 라면을 먹으며 행복해하던 시간, 식사 후 이어지는 라오스 현지에서 듣는 알찬 생방송라이브 강연, 귀신이
좋아할 것 같은 폐교 같은 학교숙소에 적응해나가던 시간, 하지만 아무리 노력해도 적응되지 않았던 차디찬
물로 하는 한밤중 샤워, 밤 늦게까지 뜨거운 봉사대 열기를 유지시켰던 재림청년들의 소그룹, 잠깐 눈을 붙였을 뿐인데 체감시간 5분만에 다시 일어나야 됐던 기상시간, 멀쩡해 보이려면 일어나자마자 5분 안에 씻고 입고 준비 다 끝내야
했던 빡센 스마 스케쥴ㅋ, 아침에 깻잎 한 장과 참치캔 하나에 입이 귀에까지 걸린 라오스에서 느껴보는
한국의 맛, 오카리나 연주에 걸 맞춘 카페 분위기 나는 라오스 야외 식당에서 한 입으로 먹느라 웃느라
바빴던 아침시간, 준비를 다 하고 트럭 앞에 모여 그 날 있을 봉사일정에 기대감으로 차 있던 모습, 트럭에서 떨어지지 않으려 서로를 꽉 잡고 같은 목적지로 이동하는 끈끈한 우정… 딱
한 가지 아쉬운 것은 방비엔과 항아리로 나누어 졌어야 했다는 것. 하지만 방비엔&항아리 모두 행복했다는 것ㅋ”

소중했던 시간들을 모래시계 안의 모래알처럼 간직하고 싶네요. 언제라도 그리워지고 생각나면 모래시계처럼 뒤집어 모래알이 내려흐름과 동시에 일주일 동안 함께 했던 추억을
떠 올릴 수 있게 말이
에요. 벌써 저도 스마앓이에 걸렸나 봅니다. 주변에서 스마앓이 무서운 전염병이라던데…ㅎㅎ 이왕 걸린 거 영원히 치유되지 않았으면 좋겠네요. 하나님의
기도 응답이신 스마분들! 저에게 이런 무시무
시한 전염병을 옮겨 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