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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기 #6. 26일(목)
이날은 전날과 달리 방문진료가 없어서 인원을 배치하기에 수월했다. EMR을 사용하는 것은 전날과 마찬가지였다. 나는 오전에 예진으로 시작했지만 도중에 조수현 선생님과 역할을 바꾸어 내과 진료보조를 하게 되었다. 진하는 박병원 선생님의 진료보조를, 나는 강기훈 선생님의 진료보조를 맡게 되었다. 강기훈 선생님께서는 몸 상태가 좋지 않아 보이셨다.
사실 몸 상태가 좋지 않은 사람들은 나와 강기훈 선생님 뿐만이 아니었다. 전날부터 몸 상태가 좋지 않았던 다형이는 결국 처음 배치된 약국 대신에 남자 물리치료실로 부서를 옮겼다. 나중에 듣기로는 다형이가 수액을 2L나 맞았다고 했다. 또한 봉사 기간 내내 부지런히 돌아다니시던 김형준 선생님이 안 보이셔서 어디 계신가 궁금해 했는데, 나중에 보니 몸이 안 좋으셔서 물리치료실에서 누워서 쉬시고 계셨다.
강기훈 선생님의 오전 진료는 오후 1시까지 계속되었다. 배고프고 지친 상태로 이곳 병원에서의 마지막 점심식사를 하러 갔다. 편식 채식을 하시는 자연 누나와 같은 테이블에서 식사했다. 이날은 웬일로 고기가 들어간 반찬 대신에 두부가 들어간 반찬이 제공되었다. 덕분에 식사를 다른 날보다도 더 맛있게 할 수 있었다.
점심 식사를 마치고 수현이의 부탁으로 인터뷰를 촬영하게 되었다. 처음에는 산부인과 진료실에서 동영상 촬영을 했지만 썩 마음에 들지 않아 장소를 옮겨서 재촬영 하기로 했다. 인터뷰 장소를 찾으러 돌아다니다가 진료실 복도를 지나가던 중에 오 이사님과 라오스 환자가 물리치료실에서 자고 있는 모습을 보고 신기하게 생각했다. 진료실 밖에서 인터뷰를 마치고 돌아오다 보니 물리치료실에서 자고 있던 사람들은 오 이사님과 라오스 환자가 아니라 윤선이 누나와 유진이였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오후에는 오전과 마찬가지로 다시 강기훈 선생님의 진료보조를 하게 되었다. 오전과의 차이점은 박병원 선생님께서 내과 진료실에서 자리를 옮기셔서 남자 물리치료실에서 진료하시게 되었다는 점이었다. 물리치료실에서도 무선 인터넷이 접속되어 처방전 인쇄는 할 수 있었다. 그러나 산부인과 진료실과 마찬가지로 인쇄된 처방전을 가지러 진료 보조 학생이 내과 진료실을 오가야 했다.
이날 오후 진료는 오후 3시까지 하기로 했다. 진료가 마쳐갈 즈음에는 처방전을 인쇄할 종이와 잉크가 거의 다 떨어져서 초조했다. 결국 종이는 다 떨어졌고 사용하지 않은 진료차트를 이면지로 사용하여 처방전을 인쇄했다. 다행히 마지막 처방전을 인쇄할 때까지 잉크는 끊기지 않았다.
진료를 마친 뒤에 짐 정리를 시작했지만 끝내지 못했다. 폐회식을 마친 뒤에 다시 돌아와 짐 정리를 하기로 하고 몇 명씩 차를 나누어 타고 폐회식 장소로 이동했다. 폐회식 장소는 마을회관 같은 곳이었는데, 규모는 생각보다 컸다. 먼저 도착한 사람들이 테이블에 흩어져 앉았다. 선생님들은 보다 앞쪽 테이블에 모여 앉으셨다. 나중에 출발한 팀들이 속속들이 도착해서 자리에 앉았다. 내 양 옆에는 진하와 다형이가 앉았다.
테이블에는 몇몇 음식과 장식들이 세팅되어 있었다. 가장 먼저 눈에 띈 것은 닭대가리였다. 과자들도 있었는데 대개 새우가 들어가 있어서 우리들이 먹기는 어려운 것들이었다. 그 외에는 삶은 계란과 몇몇 과일이 있었고 처음 보는 기구들이 있었다.
폐회식이 시작되고 라오스 씨엥쾅주의 ‘지도사’의 인사말과 최대로 선생님의 말씀을 비롯하여 이런 행사에 으레 포함되는 순서들이 진행되었다. 폐회식에 참석한 마을 주민들의 규칙적인 박수 소리를 들으며 이곳이 사회주의 국가임을 상기하게 되었다. 내 옆자리에 앉은 진하는 배터리가 다 떨어질 경우를 대비하여 추가 배터리까지 준비해 와서 셀카를 찍고 있었다. 나는 핸드폰을 챙겨오지 못한 어리석음을 자책하면서 가만히 앉아있었다. 인사말들이 끝난 뒤에는 봉사대원 한 명씩 나와서 도지사로부터 표창장을, 병원장으로부터 선물을 전달받았다.
그 이후에는 라오스 고유의 환영 의식이 시작되었다. 샤먼으로 보이는 사람이 앞에 나와서 한참 동안 주문을 외우더니 끝에는 쌀을 뿌려대서 깜짝 놀랐다. 그런 뒤에는 술을 마셔야 하는 시간이 있었는데 다들 양해를 구하고 사양했다. 그런 뒤에는 서로의 손목에 실을 걸어주면서 축복하는 시간이 있었는데 나는 참여하지 않았다. 여러 예상하지 못한 상황을 맞아서 당황스러웠다.
그런 뒤에야 식사를 할 수 있었다. 테이블에 놓여져 있던 닭과 과자들이 치워지고 대신에 마을 사람들이 파트락 형식으로 준비해온 음식이 차려졌다. 참새고기 등을 보고 비위가 상한 나는 주로 람부탄과 망고만 먹었다. 그것만으로는 배가 부르지 않았는데 진하가 초콜릿을 나누어주어서 맛있게 먹었다. 진하의 준비성에 놀랐고 고마웠다. 장염에 걸려서 물만 마시고 있던 다형이의 모습이 안쓰럽게 느껴졌다.
폐회식이 마친 다음에는 또 다시 저녁식사를 하러 식당으로 이동했다. 매일 저녁마다 식사를 했던 식당에 이날 저녁에도 식사를 하기로 예약을 했었는데, 예약한 것이 취소가 되지 않는다고 하여 어쩔 수 없이 가야 했다. 앞서 과일만 먹었던 나에게는 오히려 잘 된 일로 느껴졌다. 그곳에서 나, 진하, 유진이 등 몇몇 사람들만 식사를 했다. 식사를 하는 동안 그 동안의 봉사활동 사진을 슬라이드 쇼로 보여주었는데, 이날은 다들 식사를 하지 않으니 사진에 집중했다.
식사 후에는 종이로만 피드백을 하고, 늦은 감이 있지만 그 동안 수고해주신 직원 분들과 통역 분들을 소개하고 둥글게 서서 복음성가를 불러주었다. 통역 분들도 라오스의 ‘이별의 노래’를 기타 반주와 함께 들려주었다.
통역 분들에게 작별 인사를 하고 남은 짐들을 정리하기 위해 다시 병원으로 이동했다. 물품들의 목록과 수량을 확인하고 박스를 분류하는 작업을 했다. 당장 다음 날 아침까지 진료 통계를 산출해야 하는 상황을 맞아 나는 짐 정리에 참여하지 않고 차트 정리를 하기 위한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짐 정리 작업이 끝난 뒤에는 다같이 진료실에 모여 서로 사진을 찍으면서 이별의 아쉬움을 달랬다. 이 때에 나는 아침에 핸드폰을 챙겨오지 못한 것을 두 번째로 후회했다.
짐 정리를 마친 뒤에는 숙소로 이동했다. 나는 숙소에서 차트 정리를 위한 프로그램을 완성하고 뒤늦게야 김범태 기자님께서 준비한 사진전을 보러 갔다. 사진들마다 이야기가 있었고 감동과 즐거움이 있었다. 내가 나온 사진 중에는 전날 정전되었을 때에 산부인과 진료실의 조명 역할을 하던 일명 ‘용감한 녀석들’ 사진이 가장 인상적이었다. 참고로 그 사진은 스무 번 넘는 반복 촬영 끝에 얻어진 작품이다.
사진전이 마친 뒤에는 전날에 이어 강기훈 선생님의 사랑학 각론 시간이 시작되었다. 모두들 그 동안의 봉사 기간 동안의 피로가 누적된 상태에서 폐회식과 짐정리, 사진전 등을 거치면서 지쳐 있어서 강기훈 선생님의 말씀에 집중할 수 없었다. 나는 노트북을 이용하여 좀 전에 만든 차트 정리 프로그램으로 최대로 선생님과 함께 차트 정리를 했다. 사랑학 각론은 좋은 시간이었지만 길게 진행되지 못하고 일찍 끝나서 아쉬웠다.
사랑학 각론 시간이 끝난 뒤에는 의대 고학년인 구원 누나와 윤선이 누나가 차트정리에 합류했다. 그러나 일손이 부족해서 금방 끝나지 않았다. 결국 자고 있던 진하를 깨워서 데리고 와서 함께 차트 정리를 했다. 도중에 최대로 선생님께서는 먼저 쉬러 가셨다. 나머지 사람들은 새벽 3시까지 남아서 700여명의 환자 자료를 입력했다. 다들 너무 고생해서 고맙고 미안한 마음이 들었고 한국에 돌아오면 이들에게 좋은 식당에서 식사를 대접하리라고 마음을 먹었다. 결국 새벽 3시가 되자 체력의 한계를 만나 다들 자러 돌아갔다. 남은 환자 300여명의 자료를 입력하다 보니 날이 밝았다. 중간중간에 생전 보지 못했던 거대한 곤충들을 화장실에서 만나서 잠이 확 달아났다. 새벽 6시쯤에는 일찍 일어난 현정이 누나가 구경을 오시기도 했다.
결국에는 모든 입력 작업을 끝냈다. 아침에 눈을 뜬지 24시간만에 잠자리에 들었다.
후기 #5. 25일(수)
진하정의 라오스 봉사대 사족 99% 후기 3
라오스 웹툰 <마무리편>
선생님이 되어 쓰는 후기4 – 봉사 둘째날
전 내일부터 일을 시작해서….. 그 이후 내용은 잘쓸 수 있을까 모르겠네요. 하지만!! 이게 젤 많이 쓴(진도로만 보면.. 봉사날까지 후기쓴게 거의 처음??ㅋㅋ) 후기라는 거~~
이해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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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봉사 둘째 날
피곤함 속에 시작한 둘째날.
둘째날의 아침 예배는 현지 통역을 맡은 청년이 어떻게 하나님을 믿게 되었는 지에 대해 우리에게 말씀해 주었다. 라오스에 가기 전부터 라오스는 사회주의의 나라이며 90프로가 불교, 나머지에서도 아주 소수가 기독교임을 알고는 있었지만… 라오스 나라 속에서 하나님을 믿기가 그렇게 어려운 일인줄은 몰랐다. 그리고 그 현실은 봉사 마지막날 간접적으로 체험하게 되었다.. 암튼 기독교인 특히 재림교인으로서 라오스에서 믿음을 지키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알수 있는 날이었다. 그리고…… 말하는 현지통역보다 전해주는 서준이의 리액션이 빵빵 먹히면서……. 민서준신학대보내기 캠페인이 벌어질뻔 했다.ㅋㅋㅋㅋ
반쯤 안개와 반쯤 구름낀 야외식당에서의 오카리나 연주는….. 눈으로 음식을 보고 귀로 연주를 듣고 입으로 먹는 사람들에게는 아주 분위기있게 들릴 연주였지만…… 밥 다먹었다고 카메라를 들고 동영상으로 촬영한 나에게는 갈수록 이글어지는 하라오빠의 표정에….. 음.. 오빠 미안해 ㅋㅋㅋ 혹시 그 연주가 다시금 듣고 싶은 사람들은 연락주세요 ㅋㅋ
암튼 살짝 내리는 비를 맞고 우리는 병원으로 출발했다.
이날은 아침부터 강기훈 선생님 방문진료 나가시고 현정언니는 세미나를 가는 바람에 나도 진료를 하게 되었다. 이날 부터 난 쭉 ㅜㅜ 진료를 하게 되었다. 아~ 진료를 안하던 나날들이여ㅜㅜ 환자들은 다양한 근육통, 위염, 어지럼등등의 증상을 호소했고. 내가 줄 수 있는건 물리치료, 진통제, 소화제/위보호제 밖에 없었다. 현정언니는 손잡고 기도한다는데….. 나는 부끄럽지만 잘 낯선 사람을 위해 기도한다는 것… 정말 쉽게 되지 않는 일이다, 종교의 자유가 보장되는 한국에서 조차도…. 그래서 나는 미소 하나만.. 그들에게 줄 수 밖에 없었다.
그 전 봉사대…. 가장 기억에 남는 선생님 (그렇다고 다른 선생님들이 기억에 안 남는 건 아니예요~ 사랑해요 선생님들^^ )중 하나이신 진석준 선생님은 항상 웃는 얼굴이시기도 하지만, 가장 힘든 시간인 오후 4시에도 환자를 향해 환하게 웃어주셨던… 그 모습이 기억나기에 나는 처음 환자를 대할 때, 미소로 대했다.
현정언니가 세미나를 떠나고 난뒤 잠시 조용했던 진료장이 잠시 부산해지더니 갑자기 나를 부른다. 산모가 왔단다….. 나보고 어쩌라고;;; 난 산부인과 인턴도 안 돈 내가….. 다행히 조산사가 있었다. 난 어리버리 하고 있는 사이 김영선 간호사님과 조산사가 분주히 움직이고 계시기에… 조용히 물러나와 진료를 보았다. 근데 아무리 봐도 양수 색이 안 좋아서….. 뭔가 불안했는데 어떤 항생제를 주어야 할지.. 어떻게 해야할 지 몰라 현정언니만 기다리고 있었다.
그리고 태어난 아기… 그 유명한 종이컵 사건이 일어나게 되었고(응?) 이건 그날 저녁까지 계속 회자되었다… 그리고 현정언니가 와서 그 산모는 마무리 되었다..
이날 오후에도 산모가 왔다. 이전 봉사대에서 이런 적 없었는데 산부인과 의사왔다는 소리에 왔자보다. 하지만 결론적으로 두 아이 모두 현정언니 없을 때 애를 놓았다는거… ㅎㅎ 그 오후에 온 산모는 현정언니가 몇차례 갔지만 결국 새벽에 애를 놓았다.
다사다난 했던 하루가 가고.. 저녁시간.
그날은 박병원선생님께서 강의를 하셨다. 그 첫인사가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 ‘안녕하세요. 전 하나님을 믿는 사람입니다.’라고 시작한 첫 인사에 우리 모두가 감명을 받았다. 박병원 선생님께서 어떻게 하나님을 믿게 되었는지, 어떻게 변했는지, 그리고 라오스에서 어떤일을 하셨는지, 책에서는 간단하게 나온 탈라세미아에 대한 이론적인 내용까지..
그리고 이어진 소그룹..
많이 아쉽긴 한데 심화반이었던 우리반은 소그룹사이에 차이가 많이 벌어진다기에 멤버를 조금 바꾸어 예배를 드렸다, 하지만 그래도 우린 우수반 ㅋㅋㅋㅋㅋ 늦은 시간에 시작해 다들 감기는 눈 부릅뜨며 예배를 드리고 각자 방으로 헤어졌다. 어김없이 막히는 샤워실과의 사투를 벌이며 그날 하루를 마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