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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하정의 라오스 봉사대 사족99% 후기 2

 

그렇게 그렇게 들뜬 기분을 한순간 가라앉히고 몽족마을에 도착했습니다.

정말 이런 곳에서 과연 사람이 살고있을까 생각할 정도로 주변에 온통 산 산 이었는데 마을이 나타났습니다!

 

이곳은 26가구가 사는 작은 마을이에요~ 그래도 가족 단위가 커서 그런지 사람수가 100명은 넘고 200? 정도 사는 것 같았습니다. 비가 조금씩 오고 있었는데 저희가 봉사할 곳은 언덕 위 작은 초등학교. 언덕 위는 아름다웠으나 올라가는 길은 비에 젖은 진흙, 곳곳에는 소의 것으로 추정되는 똥이 정~말 많이….. 운동화를 신고 와서 어찌나 다행이었는지요.. (그 이후로 라오스에서 그 운동화는 다시 신지 못했다는.. 한국에 돌아와서 엄마한테 몽족 마을과 함께 저의 진흙반 똥반 운동화를 소개해드렸더니 그자리에서 제가 빨아야 했다는..ㅋㅋㅋ)

 

학교의 한 반을 진료실로 정하고 사람들을 들어가게 했습니다. 학생들의 책상에 40명정도가 쭉 앉았지요. 사실 누가 먼저 왔는지도 모르겠고, 어디서부터 불러야 할지 대책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함께 사는 사람들이라 그런지 순서를 저희 맘대로 정해도 전혀 불만 없으셨고, 절대로 크게 소리 낼 일이 없었습니다. 몽족마을 정말 평화로움~^-^

 

처음에는 차트가 없으니 선생님 옆에 앉아 환자 기록을 종이에 순서대로 적었습니다. 선생님께서 불러 주시는 데로 환자 신상, 증상, 처방 등등을 적고 선생님께선 약봉투 위에 약국에서 볼 처방전을 다시 적으시고.. 차트를 챙기지 않은 결과였죠하지만 이것은 약과.. 그때는 이것으로 후에 제게 어떤 일이 일어날지 전혀 예상치 못했다는…..

 

그래도 저는 선생님 옆에 앉아서 기록하는 게 나름 재밌었어요! 특이적인 환자도 있었던 것 같고, 선생님께서 말하시는 것 하나하나 귀기울이여 들었습니다. 정말 재밌었던 광경은 physical examination을 해야 하는 환자가 있으면 환자를 책상에 눕게 한 후에 복부 진찰을 하셨거든요? 그런데 그곳이 교실이고 책상은 칠판 앞 중앙에 놓여있으며 40명의 대기 환자가, 80개의 눈이 그곳으로 쏠렸죠. 정적이 흐르고.. 마치 의과대학에서 physical examination 강의를 듣는듯한 기분이랄까요..ㅋㅋㅋㅋ 선생님께서는 역시 수많은 시선에도 절대 굴하지 않으시고 멋있는 진료를 이어가셨다는^0^ !

 

그런데 어느 순간 이수정 약사님께서 밖에서 오래 기다리고 있는 사람들을 위해 직접 나서셨고, 저는 약국(옆 책상)으로 이동했습니다. .. 이렇게 전 또다시 강기훈 쌤과 멀어져만 갔지요..ㅠㅠ

 

약국은 정말 정말 심심했어요. 봉사지의 모든 약을 다 가져올 수 없는 상황인지라 약의 개수가 적었고, 무엇보다 몽족마을은 라오인들과 쓰는 언어가 달라요. 그래서

 

강기훈쌤 영라오 라오몽 환자 몽라오 라오영 강기훈쌤

 

무려 세가지 언어로 전달전달 하는 상황이니 환자 한명 보는데 엄청 오래 걸렸어요. 게다가 라오몽 통역이 그마을 의사선생님이라는 엄청난 함정이 있었으니ㅋㅋ

 

강기훈 쌤이 한마디 보내시면, 그분은 이때다! 하고 진료를 보시는 듯했어요…. 어찌나 말을 많이 하시던지..ㅋㅋㅋㅋ;;;; 상황이 이렇다보니 약국에 앉아있던 저는 꾸벅.. 꾸벅.. 졸기 시작했고.. 결국 대기하고 있던 마을 아주머니 아저씨들이 절 보며 키득거리는 소리에 깼습니다. 강기훈 선생님께서 미소지으시며 많이 피곤하니?” 하시는데 어찌나 부끄럽던지요.ㅋㅋㅋ;;;;;;;;;; 아.. 선생님과 또다시 멀어져가는 기분이ㅜㅜㅜ

 

얼마 지나자 오이사님께서 마을에 도착하시고 저희는 이장님댁(?)으로 추정되는 곳에서 점심식사를 했습니다. 이장님댁으로 가는 길은 아까 올라왔던 그 진흙반똥반 길을 내려갔어야 하는데이런 것을 보고 온고지신이라 하나요. 아침의 배설물들은 진흙과 오버랩되고 있었으며 새로운 배설물들이 깔렸ㅋㅋㅋㅋ;; 아침에 내가 피해 밟은건 진흙이 아니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제가 보기에도 후기가 넘 더럽네요….ㅠㅠ) 여튼.. 미끌미끌 내려와서 이장님댁 도착. 역시 라오스타일은 맨땅위에 집. 게다가 집안에서는 캠프파이어가..;; 호흡기질환돋는 구조라는..ㅜㅜ;

 

거기에서 여러가지 음식을 대접을 해 주었는데 저는 그냥 오이사님께서 가져오신 MSG돋는 계란후라이와 밥을 먹었어요.ㅋㅋ;; (라오스의 음식은 미원이 많이 들어간다는) 밥을 다 먹으니 비가 꽤 내렸고, 비가 조금 멈추기를 기다리다가 다시 언덕위의 초등학교로 올라갔습니다.

 

오후진료는 오전진료와 큰 차이는 없었습니다. 오이사님께서 봉사지에서 배달해주신 약들로 갯수가 더 늘었다는점?

 

아침에 도착했을때부터 저는 지뢰를 피하며 올라오기에 바뻤는데 강기훈 쌤은 마을 구조를 살피셨어요. 길 상태도 그러하며, 가구보다 가축우리가 위에 있는 집들도 여럿 있었던 점, 어린아이들은 신발을 신지 않는다는 점을 지적하시며 이러면 감염환자가 많을 거라 하셨지요. 역시 감염환자가 꽤 많았었던 것 같아요. 생각나는 것은 허벅지에 꽤 심하게 봉와직염 생긴 아기도 있었는데 이 아기는 병원으로 보냈습니다.

 

오후진료는 생각보다 일찍 마쳐졌어요. 내려오면서 드는 생각이 이 마을은 천국같다는… 그것은 바로 동물과 함께 뛰노는 아이들. 이것이 바로 제가 어릴때부터 그리던 하늘나라의 모습이었거든요.ㅋㅋㅋㅋ 사자등에 업히고 기린목에서 미끄럼틀타는 하늘나라…ㅋㅋ

으악 그러나 동물과 함께 뛰노는 실상은 그리 좋지만은 않더군요천국에서도 동물원이 있어야할듯…;;ㅋㅋ

그날 강기훈 선생님은 78명의 환자를 보셨고, 저희는 또다시 꼬불꼬불 산길을 달려 봉사지로 돌아왔습니다. . 돌아오는길에 잠깐 스친 작은 마을이 있었는데 찰나였지만 저는 보았습니다. 아이들이 꽤 큰 돼지와 함께 뛰는 모습을..ㅋㅋㅋㅋㅋ;;; 이런게 천국 아니겠어요? ^-^;;;

 

돌아오는 길에 저를 위협하는 것이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종이에 적혀진 78명 환자들의 차트. 강기훈쌤이 그걸 제게 건네면서 돌아가서 이 차트를 정리하라고 하셨어요.. 끄악! 저는 도착하자마자 윤석오빠한테 차트 80장을 받았습니다. .이게 생각보다 꽤 오래걸리더라구요.. 딱히 쓸 책상의자가 없어서 어디서 해야하나 헤매다가, 아무도 없이 바람만 부는 야외 접수파트에서 홀로 쓸쓸히 차트를 정리했습니다. 어찌나 쓸쓸하던지 혹은 씁쓸하던지.. 궁상맞지만 제 폰으로 노래를 틀었습니다. 그날 저녁에 서준이가 제게와서 자세의 흐트러짐 없이 열심히 하는 모습이 멋있었다고 말을 해주더라구요ㅋㅋㅋㅋㅋㅋ……….. 그날 밤 소그룹을 마치고 딱딱한 침상 위에서 남은 차트를 정리하는 저의 자세 또한 흐트러질 틈이 없었다는….;;

이렇게 큰 설렘으로 갖고 떠났던 저의 방문진료날은 씁쓸하게 마무리되었습니다.. ^^

 

너무너무 값지고 즐거운 경험!! 강기훈 선생님 감사해요~^-^

 

벌써 해가 지고 꿀같은 안식일이 지나가버렸네요..

흠, 제 후기가 너무너무 길어졌죠..ㅠㅠㅠ;;

이제 공부를 시작해야겠어요.ㅠㅠ 진료보조 후기는 이번주 시험 끝나구 올릴게요.ㅋㅋㅋㅋㅋ

그럼 모두 즐거운 주말 보내세요~ ^-^

꾸벅 

 

 

후기를 이제야…1

안녕하세요~
봉사대 다녀온지가 벌써 한달이 넘었네요ㅋㅋ
미천한 예과생주제에 골학했다고 엄살 피우다 이제야 후기를 씁니다 ㅎㅎ

7/21 토요일 라오스로 출발

아침 4시반 졸린 눈을 비비고 일어나서 어제 대충 싸둔 캐리어를 마무리짓고 구리시로 유진이를 태우러 아빠차를 타

고 출발! 이번 라오스 봉사대는 사이버부장이라는 오묘한 직책을 맡아 회장단으로 게다가 유진이까지 데려가는 봉사

대여서 심리적인 압박을 조금 받으면서 갔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9시 비행기를 기다리면서 유진이랑 방콕에서 주어

진 6시간을 어떻게 알차게 보낼까 생각하다 보니 기대와 설렘을 안고 방콕행 비행기를 탑승했다. 방콕에 도착해서

환전과 정보를 얻느라 우물쭈물하다가 입국 심사대에 늦게 도착해서 생각보다 오래 나가있지는 못했지만 까짓꺼 아

빠 카드도 받았는데 비행기 놓치면 새로 끊지뭐 라는 생각으로 열심히 구경하고 놀았다ㅋㅋ 방콕을 출발해서 밤 9시

라오스에 도착!

비행기에서 내리자마자 엄습하는 습기와 열기에 와;; 고생좀 하겠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입국 심사대로 향해 가는

앞에 현정누나를 닮은 사람이?! 본대는 1시간 후에 도착이니까 현정누나는 아닐텐데 굉장히 닮았네 라고 생각하고

있는데 속속들이 도착하는 선생님들과 봉사대원들. 인사를 나누고 짐을 실고 막사이 파라다이스 숙소로 향했다.

도착해서 현지인처럼 짐을 날라주고있던 서준이와 같은 방에 들어갔다. 예배를 드리고 난 뒤 에어콘이 있는 3층 방

들에 모여서 드래곤과일과 밤알만한 과일을 먹었다. 먹어본 용두과 중에 가장 싱겁고 맛이 이상했지만 몸에 좋은거

라고 혀를 속이며 상훈이형이랑 열심히 먹었다. 볼때마다 사촌누나를 생각나게해서 웃게만든 초아누나, 침대구석에

서 모자 뒤집어쓰고 용두과먹는걸 구경하던 다은누나 학생인줄 알았는데 선생님의 포스가 느껴지던 자연누나까지

새로운 얼굴들을 익히는 다과시간이엇다.

7.22 일

어젯밤 오랜만에 만난 서준이랑 이야기하다 늦게 자는 바람에 알람도 끄고 늦잠 ㅋ은섭이형이 깨워서 내려갔을때는

이미 8시20분 출발 10분전;; 로비에 있던 빵에 잼만 발라서 서둘러 챙기고 씨엥쿠앙으로 가기 위해 국내선을 타러갔

다. 공항에서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수정이모가 개인에게 할당된 짐 무게를 훨씬 초과해서 모든 짐을 비행기에 싣는

기적을 보았다. 경비행기를 타고 씨엥쿠앙으로 갔는데 가는 내내 보았다 아름다운 경치와 심장을 쫄깃쫄깃하게 해주

는 흔들림에 피곤했지만 잘 수 없엇다. 우리나라 간이역 정도의 씨엥쿠앙 공항? 에 도착해 트럭들에 짐을 나눠싵고

약 40분간 달려서 봉사기간 숙소로 사용될 기숙사에 도착했다. 지나치면서 찜통같던 비엔티엔에서와는 달리 쿤 지역의 날씨는

바람이 많이 불고 비가 자주 오며 서늘해서 좋았다. 짐을 대충 풀어놓고 쿤 군 병원으로 가서 진료를 위한 세팅을 했

다. 비록 치과의 이 모 누나의 매우 신중한 선택으로 인해 똑같은 침대를 이리옮기고 다시 갖다놓고 하느라 힘들었지

만 ㅋㅋㅋ 작년과는 또 다르게 많은 선생님들과 심전도와 심전도 같은 전문기기등을 보면서 기대감에 가득찼다.

배고픈 배를 이끌고 라오스에서 처음 간 식당은 쌀국수 집! 치킨 쌀국수와 소고기 쌀국수가 있었는데 범태 기자님을

백으로 서준이랑 2그릇씩 먹었다ㅋㅋ 숙소로 돌아와 고등학교 기숙사 화장실 같은 물이 안빠져서 바닥에 비누거품

이 넘실대는 화장실에서 씻고 돗자리를 깔고 잠을 청했다. 동남아니까 당연히 선풍기를 틀어 놓고 잤는데 바닥에서

올라오는 한기로 너무 추워서 벌벌 떨면서 잤다.

7.23 월 봉사 1일째

첫째날 유진이와 약국으로 배정을 받았다. 수정이 이모가 약사를 하니까 뭔가 가족 선교를 온것 같아서 좋았다 ㅎ

동우형이 야심차게 준비한 EMR?? 인가 전자 문진을 받고 약 처방전을 프린트 하는 일이었는데 허리가 아픈 환자에

게 알레르기약이 처방됫다고 나오는 등 문제가 생겨서… 그날부로 전자 문진은 끝이났다. 그일이 너무 안타까워서

이날 있었던 다른일들은 잘 기억이 나지않네요; 주향누나랑 수정이모 계속 이것저것 물어봐서 귀찮았을 텐데 짜증안

내고 잘 알려주셔서 감사햇습니다 ㅋㅋㅋ

7.24 화 봉사 2일째

스마의 보이지 않는 기둥은 의과!! 였지만 유일한 예과생 값싼 인력인 나는 치과로 파견을 나갔다. 필리핀에서 소독

과 스케일링 어시 1번의 경력이 있다고 잘할거라고 기대를 하셔서 실수 안하려고 노력하느라 힘들었다ㅋㅋㅋ

스케일링 어시는 몸이 고생하지만 뭔가 내가 없는 지식으로도 도움이 되는 봉사를 하는 거 같아 보람찼다 ㅋ 하지만

치과로 파견 나가면 현지 환자들과의 소통이 거의 없을 수 밖에 없어 아쉬웠다.

봉사가 끝난 후 저녁식사 시간, 필리핀에서 끓였던 비빔면 30개의 추억을 가지고 진라면 30개를 끓였다. 비빔면때

면발이 불어버렸던걸 만회하기위해 소은누나 다은누나 서준이 지혁이형 자연누나와 열심히 끓였다. 이번에는 정말

잘 끓여졌다고 생각했는데 생각외로 엄청 많이 남았다 ㅋㅋㅋㅋ 손도 못댄 한 그릇은 결국 주방을 빌려주신 식당분

들께 드시라고 반강제로 드린게 마음에 걸린다.

7.25 봉사 3일째

오전은 건강교육을 했다. 서준이를 믿은만큼 라오스 통역사 폰을 믿었기에 내가 뭘 빼먹더라도 다 채워주리라는 믿

음으로 건강교육을 했다 역시 폰이 보충 설명까지 곁들여 가며 설명을 끝마쳤다. 건강교육이 끝나고는 번호표를 나

눠주고 대기환자를 통솔하는 일을 했는데 할 줄 아는 라오스 말이라고는 “싸바이디 속디 컵짜이” 이 세마디가 전부

여서 처음엔 굉장히 민망했다. 치과환자를 5명 씩 보냈는데 진료가 길어지면서 사람들이 계속 재촉하기 시작했다.

내가 무전을 칠때마다 5명 씩 보낸다고 눈치를 챈 사람들이 계속해서 무전을 치라고 재촉했고 무전에서 소리가 들려

올때 마다 아줌마 아저씨들이 웃으면서 표를 달라고 했다. 줄을 세워도 늦게온 사람들이 자연스레 새치기하고 원래

있던 사람들도 웃으면서 내 반응을 지켜볼뿐 아무런 불만이 없는걸 보고 와 라오스 사람들 정말 순진하고 즐겁게 사

는 구나 했다 ㅋㅋ 봉사기간 유일하게 말은 안통하지만 사람들과 소통하고 웃을수 있어서 즐거운 시간이었다.

오후: 치과에 갔다.

늦게 후기를 쓸려니 힘드네요ㅋㅋㅋ 두서가 없어서;;
다음편에 나머지를 쓰겟습니다

진하정의 라오스 봉사대 사족99% 후기 1


안녕하세요^^

 

요즘 원주에 짱박혀 있는 진하정입니다.^^!!! 혹시 저를 모르는 사람을 위해 원주의과대학 본과 2학년이며 휘경동에 사는 진하정진하 ㅋㄷ

저는 20일에 개강을 해서 그럭저럭 아주아주 심심하게 살고 있어요…-0-  제 여름방학 한 달은 온통 스마로 스마스마 채워서 꽉꽉 찬 느낌이었는데 개강과 함께 밀려오는 이 withdrawal이란..ㅠㅠ 손이 떨릴 지경이라는..-_

굉장히 dry한 학기 하지만 분명 저뿐만 아니라 다른 스마인들도 마찬가지 일거라 생각하렵니다. ~

 

저는 예과 1학년에 캄보디아 봉사대를 다녀와서 엄청 열심히 후기를 썼었어요. 결국 비전트립도 못간 시점에 사진 없이 글자 크기 10으로 8페이지를 채우는 지경에 이르러서.. 그자리에서 그대로 컴퓨터에 묻었다는.. 아는 사람만 아는 이야기가…. 그 이후로 봉사대 후기란 없다! 너무 쓸 게 많아서 시작할 수가 없다를 밀며 후기를 쓰지 않았습니다.ㅋㅋ;;(죄송..) 아무 생각도 없었던 제가 개강도 한데다 봉사한지 한 달이 된 이 시점에서 갑자기 후기를 써내려는 것은,

치과만 존재하는 학생임군의 블로깅.. 의과도 가만있을 수는 없지! 그리고 무려 선생님들께서 후기를 쓰시는 사태로 강의실 의자가 가시방석이 되어버렸어요ㅠㅠ 도저히 안되겠다 싶어서 이렇게… 비루하기 짝이 없지만 제 기억을 써보려구요~ㅋㄷ (저도 사진첨부하면서 생생하게 전달하고프나.. 미천한 제겐 블로그가 없다는..ㅜㅜ) 참고로 제 글은 언제나 그렇듯 사족 99%

 

무엇을 쓸까 짧게 고민을 하다가 제가 택한건 방문진료와 의료보조! (출발부터 도착까지 쓰면 한학기 내내 쓰고 있을수도ㅋㅋ)

 

우선 저의 이번 봉사대는

제가 학생시절에 마지막으로 갈 수 있는 봉사대 였습니다ㅠㅠ (혹시 내년에도 따라가면 모른척 해주셈ㅋㅋ)으헝헝 너무너무 아쉬워요…. 그러나 아쉬움을 달래주듯 지난 4년간의 스마 봉사대 중 제게는 이번이 단연 최고~ !!! > < 이유인 즉, 몇 년간은 항상 치과 쌤들만 많고 의과쌤들은 비교적 적게 오셨지요.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을 알지만 그래도 저는 항상 그것이 너무 아쉬웠거든요.ㅋㅋ 그런데 

두둥

이번에는 의과쌤이 6!!!!!! 

무려 여섯분!!!!!!!!!!! 

꺅 선생님 정말 사랑해요ㅠㅠ♥ 세상에 ㅠㅠ 제가 언제나 간절히 원했던 의과 선생님의 시대가 도래함. 떠나기 전부터 이미 초감동~ㅠㅠ 봉사 첫날에 최대로 선생님께서 의과선생님들과 의과학생들을 모으셔서 간단히 브리핑(?)도 하고 넘 좋았어요~ 완전 의과~ 최대로 선생님 정말 감사합니다. ㅠㅠ

 

따라서 제가 크게 깨달은 것이 있었으니

스마의 보이지 않는 기둥은 의과였다

기억하세요 ㅋㅋㅋ

 

여튼

첫번째 기록. 방문진료

저는 봉사 둘째날, 몽족마을 방문진료를 떠나게 되었습니다. 저의 배치를 그날 아침에 들었는데 듣는 순간부터 너무너무 들떴어요!! 제게 이런 기회를 허락해 주시다니!!^0^ 보는 사람마다 오늘 방문진료 따라간다고 자랑에 자랑을 더했죠. 아침을 먹고 우선 다함께 병원으로 갔습니다. 그리고 조금 후에 방문진료를 나갔지요. 행여 절 깜빡 하실까 염려되어 가장 먼저 봉고에 후다닥 올라타서 대기하고 있었다는..^.^;;; 강기훈쌤, 이수정약사님, 노수현VJ, 김범태기자님, 오이사님 따님, 그리고 저. 이렇게 함께 떠났습니다. 그 마을은 해발 1800m 산골짜기에 위치해 있어서 꼬불꼬불 산을 차로 30분가량 달렸어요. 저는 내심 이번 기회를 통해 강기훈선생님과 친해져야겠다!는 마음으로 질문 리스트까지 생각하면서 엄청 설레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

차가 출발하고, 강기훈 선생님께서 가져가는 물품을 하나둘 체크하셨습니다. 저는 그때까지만 해도 전혀, 아무 생각 없었죠..

선생님께서 제게,

 

학생 체온계 챙겼어요?”

 

일차멘붕

 

학생 줄자 챙겼나?”

 

이차멘붕

 

학생 체중계는?”

 

삼차멘붕

 

차트?”

 

사차멘붕!!!!

 

끄악! 이럴수가ㅠㅠ

저 진짜 아무것도 들은 게 없었어요ㅠㅠ 학생은 보고 들으러 가는 줄….. 그게 제 일인줄 알았어요.. 제가 생각이 넘 짧았죠.. 가서 뭘 해야 하는지 물어보기라도 했었어야 했는데.. 그저 손은 가볍게, 들뜬 마음만 한아름 봉고에 싣고……..

가는동안 학생에게 전달이 잘 되지 않는 것에 대해 다같이 고찰을 했으며, 여러 가지 준비가 안 된 것을 다음 날 방문진료 때는 되풀이되면 안되겠다는 피드백을 . . . .ㅠㅠ

제 그날의 목적, 선생님과 친해지기는 처음부터 틀렸다는 생각에 우울해져서 봉고에서 있는 듯 없는 듯 조용히 마을까지 갔습니다.ㅠㅠㅠ 저 정말 강기훈 선생님과 얘기 많이 해보고 싶었는데.. 선생님은 멀게만 느껴졌습니다.ㅠㅠ 아마 저는 봉고 속에서 쥐구멍을 찾고 있었던 듯..



‘-‘; 쓰다보니 글이 이렇게 불어날 줄이야… 원래 한편으로 끝내려고 햇는데 이쯤에서 잘라야 겠어요;ㅋㅋ

다음편으로 올릴게요^-^ 

선생님이 되어 쓰는 후기3 – 봉사 첫날

아침에 다 같이 모여 예배를 드리고 밥을 느긋하게 먹고 있다 시간을 보니 시간이 ㅎㄷㄷ …
회장을 제촉하고.. 밖에서 기다리는데 다들 꾸물거리는 거다.
오늘 높은 분들이 오셔서 세레모니후 바로 진료를 시작한다는데 높은분들이 왔는데 우리가 도착 안해있으면 어쩌지ㅜㅜ 하는 생각에 근데 들어가서 진료준비를 해야하는데 어쩌지 란 생각에 제촉을 하는데 잘 모이지 않아 소리를 좀(?) 세고 거칠게 ㅋㅋ 내었다.
난 역시 이런 캐릭터인가.. 학생때나 선생때나 고쳐지지 않는구나… 하며 도착한 병원에선 사람들이 많이 모여있고 선생님들은 도착해있었다.
그리고 다행이 높은 분들이 오지 않아 먼저 기도를 하고 준비를 시작했다. 
기다리던 사람들을 보는데 그제서야 진짜 봉사대를 왔다는 것을 실감했다.
높은 분이 와서 세레모니를 하고 난뒤 진료를 시작했다. 

나는 통역이 없어서란 핑계하에 진료를 하지 않고 산부인과 진료보조를 했다. 하지만 안내가 한명도 없이 돌아가는 터라 바깥 상황이 너무 복잡해 져서 진료보조보다는 거의 돌아다니며 안내와 쉴세없이 찍어대는 심전도를 정리했다. 
아~ 학생같애~ ㅋㅋ
진료가 부담이 되던 나에겐 통역이 없다는 것이 다행이었다. ㅎㅎㅎㅎ

아침에 거의 안내역활을 하고 있는데 진료기다리는 곳에 앉아 있던 여자가 자꾸 나에게 대화를 시도하는데 이야기는 안통하는데 바디랭귀지로 보니 아기를 가지고 있고 머리가 아프다라는 말을 하는 듯했다.
그러나 진료차트를 가지고 있지 않고 있어서 어떻게 해야할 지도 모르겠고 통역이 없어서 말도 안되고 해서 그냥 뒀는데 조금 지나서 그 여자가 쓰러지는 거다.
정말 놀래서 모두들 부르고 난리를 쳤는데 갑자기 임신중독증이 생각나면서 그걸 캐치못한 내 자신이 넘 부끄러워지는거다.
정말 내가 산부인과를 지원할 자격이 되나 싶기도 하고. 임신중독증이 아니라서 정말 다행이기도 했지만, 이었음 정말 큰일날뻔 했다. 

그래도 아무 일 없이 첫날의 진료가 끝났다. 물론 처음으로 도입한 SEMR이 중간에 중단되는 일도 있었지만 중간에 큰 혼선이 빚어지지 않아서 다행이었다.

정리가 다 끝나고 저녁을 먹으러 갔다.
저녁을 먹으며 피드백을 하는데 정말 봉사대중 이번처럼 깔끔한 피드백을 본 적이 없는 것 같다,
너무 일찍끝나서….. 우리때는 항상 오래걸려서 사람들이 봉사대에서 봉사는 안하고 피드백만 하는 거 아니냐고 할 정도였는데… 각 파트별로 자기네 끼리 이야기 하고  다른 파트에서 알아야 할 점만 간단하게 하니 정말 좋은 것 같았다.
일찍 끝나기도 하고.

그 후에 현지에서 보건 행정으로 일하시는 분의 강의를 들었는데….. 음…. 결론적으로 나는 그 파트는…… 생략하도록 하겠음…..

첫날이라 늦게 끝날 것으로 예상해서 소그룹을 안하기로 생각했는데 생각보다 일찍 끝났는데 시기가 애매해서… 갑자기 현정언니에게 부탁을 했다.

갑작스럽게 그렇게 되었지만 현정언니의 말씀으로 우리는 은혜를 받을 수 있었다.

막판에 밀려서 보진 못했지만 수년간 간질을 앓은 소녀와 그 부모에게 할 수 있는 것은 기도밖에 없음에 기도를 해준 이야기…. 왜 자꾸 난 기도가 안되는지…

예배가 끝난후에도 계속되는 기타소리에 여러명이 둘러 앉아 찬양을 드렸다. 나는  내가 그전에 넣어달라고 부탁한 찬양인 ‘주님은 산같아서’를 부르는데 자꾸 나의 산이 되시는 주님이 생각나서 같이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리고 그 후에도 찬양과 간증이 같이 있는 시간을 보낸후 헤어져 각자 자리로 돌아갔다. 

방으로 돌아왔는데 너넨 어떻게 이렇게 쌩쌩하냐며 자긴 힘들어서 그 좋은 시간을 못 즐기고 돌아오게 되어 너무 안타깝다는 한숨어린 소리에….. 같이 늙어가는 처지에 우리도 힘들다는 소릴 하며 그래도 이래야 이런 곳에서 잠 잘든다는 생각을 하며 잠자리에 누었다.

후기 3 <초코송이 동산, 쒠꽝>

프롤로그

벌써 한달이 되어간다. 모두들 일상으로 완벽 복귀했나요?

모두들 화이팅 하고 기적이 일상이 되는 삶을 살길!!

 

<쒠꽝에 도착>

으악!! 나는 낮은 목소리로 소리를 질렀다. 와…. 옆에 앉아 있는 총무, 다형이가 참 대~~단해 보였다. 이런 상황에서도 잠을 이렇게 편안하게 잘 수 있다니… 쒠꽝으로 가는 국내선 비행기는 아주 요동을 치고 있었다. 하지만 다행히도 우리가 탄 비행기는 유유히 창 밖으로 보이는 울창한 숲과, 높은 산들을 굽이 굽이 지나쳐 쒠꽝 비행장에 안전히 착륙했다. 휴우…..

 

밖으로 펼쳐진 봉사지의 첫 인상은 시원한 수목원에 들어온듯 했다. 흐린 구름을 차양으로 하여 시원이 부는 바람은 거칠것이 없었다. 우리의 교통수단이 된 소를 싣는 트럭에 모두 올라탔다. 바람을 맞으며 우리가 머무를 곳을 염탐하기에 정신이 팔렸다. 풀위에 자유롭게 있지만 마른 소들, 자기 집인양 느그적 느그적 길위를 걸어가는 가축들,,, 종종 보이는 주민들과 초코송이를 듬성 듬성 박아 놓은 듯한 구릉들을 지나쳐 우리는 1시간 쯤 떨어져 있는 봉사지로 향하였다.

 

비행기를 타기전 나는 라오스말을 하실 수 있다는 한국인 의사선생님이 우리와 함께 있다는 사실을 알고 완전, 대박 놀랬다. 어떻게 라오말을 할 수 있는 거지? 저렇게 지렁이가 지나가다 똥이라도 찔끔 싼 것 같은 글씨들을 어떤 수로 읽고 말을 할 수 있다는 것인지…. 언어에 관심이 있는 나로서 호기심이 급 발동하여 선생님께 어떤 계기가 있었는지 여쭤 보았다. 선생님은 라오스에서 코이카의 활동을 하시면서 라오말을 배우신것이라며 친절히 나의 질문에 대답해 주셨다. 이 때 나는 이미 이 선생님이 대단하신 분인것을 직감적으로 알 수 있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박병원 선생님의 좋은 영향력으로 인하여 지중해성 빈혈에 대한 치료를 할 수 있는 인프라를 구축하고 , 라오스 사람들을 위해 여러가지 좋은 활동을 하신 이야기를 전해 듣고 선생님의 따뜻한 마음에 많은 감동을 받았다.  잠깐 잊어버리기 전에 선생님께 배웠던 라오말을 몇자 적자면… 라오말은 부정문이 ‘버’이다 그래서 나는 않 아파는 ‘커이  버 쨉’이라고 했다. 하지만 질문하는 문장도 ‘버’가 들어가는데 문장 마지막에 쓰는것이라 했다. 따라서 너 아프니 ‘짜오 쨉 버’ 근데 우리는 버쨉, 쨉버 이렇게 두 단어로 모든 대화를 했다는.ㅋㅋㅋ 

 

숙소에 도착하니 이곳 현지 라오공무원들이 청소를 해주시고 계셨다. 숙소는 여러 후기를 통해 소개가 되었으니 패스.. 나는 현정이와 유미와 함께 방을 쓰게 되었다. 의사선생님들!! ㅋㅋ 나는 깜짝 놀랐다. 마냥 학생처럼 옛되어 보이는 두 아가씨가 의사 선생님이라니.. 그것도 이 스마 봉사대를 학생때부터 꾸준히 참석해온 분들이시다는 것을 알고서 스마라는 단체에 굉장한 애착을 가지고 계시는 분들임을 알 수 있었다.

 

숙소를 떠나 우리가 5일동안 활동할 병원으로 향하였다. 이미 라오 현지분들이 나오셔서 우리를 반겨주시고

현지에서 나오신 오이사님도 함께 계셨다. 짧은 소개를 마치고 각자의 자리로 돌아가 자신이 할 일을 점검하는 시간이 되자, 나는 초등학교에 처음온 1학년 학생인냥 무엇을 해야 할지 참 남감하였다. 치과를 가보잖니 모르는 기계 투성이고, 약국을 가보자니, 약사님이 누구인지도 모르고 해서 학교 후배인 강하라 소아과 선생님의 방에 들어갔다. 소와과… 하라선생님은 풍선으로 무엇인가를 만들고 계셨다. 강아지……. 순간 잔 미소가 얼굴에 번졌다. 아이들을 위한 풍선 강아지라니… 어쩜 이런 생각을 했을까? 만약 내가 라오 어린이라면 하라 선생님의 진찰실에 매일 오고 싶어질 것 같았다. 하얀 강아지, 보라 강아지, 그리고 연두 강아지를 만들었다. 함께 했던 예은이는 디자인을 전공한 학생이였던것, 그래서 였는지 창의적인 꽃과 다양한 소품을 풍선으로 만들어 주고, 다은이는 센스 만점으로 우리가 만든 것들을 정돈되게 그러나 매력적이게 배열해 주었다. 아기자기하고, 정성스레이 꾸며진 방을 보며 이곳에 올 아이들이 행복하기를 마음속으로 기도했다.

 

저녁이 되자 우리는 숙소에 모여 예배를 드렸다. 내가 유심히 보아 두었던 기타는 윤석이의 손에 들려져 있었다.

내가 처음 불러보는 찬미들….. 하지만 좋았다. 마음껏 찬미 부르고, 마음껏 기도하고, 마음껏 말씀볼 수 있도록 우리는 모든 걱정과, 눈에 보이지 않는 와이파이의 속박으로 부터 자유했기 때문이다. 찬미가 시작되자 나는 그때까지  마음속에 있던  불안감과 약간의 걱정이 찬미가락과 함께 희석되는 것을 느꼈다. 이런 아름다운 마음을 가지고 찬미하는 사람들과 함께라면 두려울 것이 없을 것 같은 확신이 들었기 때문이였다.

 

지금 이 글을 쓰면서도 한참 멍하게 그때의 그 감격을 되돌아 본다. 유미가 적었던것 처럼 그리고 다른 사람들이

적었던 것처럼 봉사지의 첫 날 저녁예배는 우리에게 5일동안 하나님이 구름기둥과 불기둥으로 우리와 함께 하실 것을 직접 느끼게 해 주었다. 우리의 마음은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을 더 잘 알 수 있다. 누가 나를 미워하는 것 아니면 누가 나를 좋아하는것.. 심지어 가끔은 상대방의 마음을 읽을 수 도 있다. 이심전심이 이를 표현하기 위해 있는 단어 아닌가? 우리는 그랬다. 처음 만난 사람들, 전공이 다르고 배경이 다르고 연령대가 다른 사람들, 심지어 언어가 통하지 않는 사람들… 하지만 우리는 하나님의 성령이 우리의 마음에 역사하시고 우리가 한 마음을 가지고, 하나님 나라의 사명을  위해 최선을 다해 협력 할 수 있음을 말하지 않지만 마음속 깊이, 뜨겁게 느끼고 있었다.

 

진지한 대화로 소그룹이 끝나고 자리에 돌아왔다. 내일 부터 시작되는 본격적인 봉사 일정을 위해 나는 아침 반찬을 확인하고 몇몇의 식구들에게 아침 차리는 것을 도와달라고 부탁하였다. 천명선교사를 다녀온지 10년 만에 다시 자보는 딱딱한  나무 침대와 침낭이 정겨웠다.  휘양찬란한 라스베가스의 푹신한 침대와 깨끗한 시트 보다 나는 첫 날 밤 침낭안에서 훨씬 편안하고 곤히 잠이 들었다. 그렇게 하나님의 보호하시는 날개 밑에 우리 모두가 고요히 잠들고 있었다.

후기 2 <도착 -내 마음의 기쁨이 뭉게 뭉게 피어오르고 >

프롤로그
이렇게 후기를 올리는 가장 큰 이유는 ‘응답하라 1997’이라는 드라마를 보았기 때문이다. ^^과거의 내가 주인공인듯한 착각을 불러 일으키는 이 범상치 않은 드라마.. 공교롭게도 이 드라마의 주인공은 나의 과거의 시간표를 따라 가고 있었다….그 드라마가 후기의 원동력이 되었다는 것은 이 게시판과 어울리진 않지만… 후기를 망설이고 있는 많은 스마인들이여… 2012년 자신이 주인공인 드라마 한편을 글로 남겨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아요.~~~

 

Maxaiy Paradise 도착 (맞나.. 명칭을 적어 두지 않아 종종 틀릴 것 같음)

예배를 드렸다. 조용한 기도에 마음이 차분해 졌다. 어제까지 애들과 씨름하며, 내가 과연 교단에 어울리는 사람인지 고민하던 내가, 공산주의 국가 라오스에, 이렇게 하루만에 와서 선생님도, 그렇다고 학생도 아닌, 그냥 김자연으로 봉사에 참여하게 된것이 너무나 신났다. 하지만 신났다고 집에서처럼 깡총깡총 뛰어다닐 수 도 없고ㅋㅋ 그저 조신하고 얌전하게 있는 듯 없는 듯 하라는 대로 하리라고 다짐,, 또 다짐을 하였다. 단지 3층에 에어컨이 없고 일인 화장실이 없어서 신나는 것이 아주 잠깐 한 3초 멈추긴 했지만.. 이렇게 내 마음 속 아주 깊은 곳에서는 기쁨이 뭉게 뭉게 피어오르고 있었다.

 

네이버 뉴스에 중학교 여선생님?인가가 자신의 직업만족도가 가장 떨어지는 직업이라고 조사된 것을 보고 씁쓸히 웃은 적이 있다. 마음속 한편으로는 그럼 누구는 얼마나 만족하며 살까?라는 답도 모르는 질문으로 그저 위안을 삼았다. 무한 경쟁의 제물이된 한국 사회에서 과연 몇 프로의 사람들이 자신의 일에 만족을 하며, 자신이 잘하는 일을 직업으로 가지고 있으며, 그 일에서 사명감을 가질까? 나는 여러 차례의 시련과 아픔의 결과로 첫번째와 두번째는 그런데로 구색을 맞춘 대답이 있었으나, 사명감면에서는 확실히 답을 할 수 없었다. 하여 아이들과 마찰이 있을때마다.. 확 이거 때려 치우고 작은 학원이나 오픈해서 내가 하고 싶은데로 하고, 짜르고 싶은 학생들 확 확 짜르고 살까? 생각도 수십번이였다. 그런 생각이 아침 저녁으로 머리속에 뱅뱅 돌던 내가 라오스에 도착해 예배를 드리고 건강 강의를 위한 교육을 원이에게 받고 있었다. 이것이야 말로 하나님의 풍성하신 은혜가 아닌가.^^저녁에 건강강의 오티가 있었다. 자궁경부암은 바이러스로 감염이 된다는 놀라운 사실을 알게 되었고, 자궁경부암 예방 백신을 맞아야 한다는 것을 듣고 완전 놀랬다.. 뭐 이래…. 백신 맞고 진짜 암 걸리는 사람은 없는 거임?  있을 수도 있다는…..이거 이런 백신은 맞아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이 시작되었으나… 결론은 내가 나이가 되어서 검사를 받아야 한다나? 하여간 이렇게 결론이 나서 참… 슬펐다………..ㅠㅠ

 

선생님들은 다른 숙소로 가시고 예배가 끝나자 신통방통하게도 과일에 배달되었다. 과일….. 무슨맛인지도 모르는 dragon fruite과 무슨 맛인지는 알지만 이름을 모르는 단감맛 같고 포도 처럼 생긴 과일의 껍질을 수건위에 올려 두었다. 이것이 우리에게 잊지 못할 보 없는?(잘 기억안남)ㅋㅋ 가위바위보를 하게 할지는 그때는 몰랐다. 그저 신기한 과일 맛에 석영이와 민준이가 잘 먹는다면서 깔깔 거리고 좋아했던 기억만 가득할 뿐… 그 밤에 유민이가 손을 베었다는 소식도 들었다. 의사선생님이 계시니 빠르고 신속하게 처리가 되었다는 소식에 모인 사람들이 안도 했지만.. 왠지 유민이가 힘들 듯 했다. 오늘이 첫째날인데 꽤 많이 다쳤다고 하던데,,, 얼마나 아릴까?

 

잠들기 전에 창문 넘어로 보이는 비엔띠안의 저녁 공기를 느껴보려 창문을 열었지만, ㅠㅠ 깜깜해서 잘 보이지도 않고, 뭐랄까 그 느낌이 상상과는 다르게 뭐라 할 수 없는 그저 후덥지근하다는…ㅋㅋ 아무 사고 없이 버스 타고, 비행기 타고, 벤타고 여기까지 오게 하심을 감사하고, 침대에 큰 대자로 누워 나의 역할을 생각해 보았다. 우선 내일 아침은 식사가 매식이니까 패스. 모두들 준비하라고 부탁했던 반찬은 어떻게 했는지 궁금했지만 그 대답이 생각 나기도 전에 후덥지근한 바람 한점이 나를 조용히 잠재웠다.

후기1 –<봉사대.... 나의 마음속에 숨겨진 기쁨을 증폭시켜줘^^.>

프로로그

모두들 안녕하세요?

다들 개강해서 바쁘죠?

저도 기억의 끝트머리를 잡아서 ^^  후기를 올려 볼까 해요. 아니면 다 잊어버릴까봐.. 나이가 있어서 ㅋㅋ 

 

봉사대 출발 전

 

정신 없이 학교에서 아이들과 시름하는 중에 네이버에 올라온 할슈타트를 소개한 글과 고요한 자연을 보듬은 마을을 찍은 평화로운 사진을 보았다. 더운 날씨에 정신까지 통째로 구워 먹을 듯한 아이들의 에너지에 반해, 나는 조용하고도 평화로운 자연을 사랑하는 일인으로 그 사진에 장소로 지친 내 마음을 고요히 달래 줄 여행을 꿈꿨다. 

 

그런던 어느 안식일 함께 교회 다니는 A양이 올 해도 어김없이 스마 봉사대를 간다고 하였다. 와… 봉사대라.. A양이 항상 다녀와서 너무나 행복해하던 봉사대, 나도 그 행복에 참여 할 수 없을까?

의료인도 아니고, 스마회원도 아닌 나도 참석할 수 있을까? 반신 반의 하며 가능성을 타진하였다.

그때는 이미 7월 초, 봉사대는 7월 21일에 출발하고 여러가지 사정이 꼭 긍정적인 것만은 아니라는 회신을 부회장으로 부터 받았다. 하지만, 무슨 이유인지,,, 내 마음은 갈 수 있다라는 느낌이 들었다. ..뭐라 설명할 수 없지만, 그랬다.  나의 마음 한켠엔 여행의 설레임을 또 다른 한켠엔 새로운 사람들과의 만남의 기대감을, 마지막 한켠에 봉사활동를 향한 기대가 차 올랐다. 얼마 후 함께 갈 수 있다는 확답이 왔고, 무엇인가 기여하고 싶은 마음에 식사를 담당하는 역할을 맡기로 하였다. 이런…. 그 일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는 그땐 그땐 몰랐었다. 그저 우리가 먹을 반찬을 잘 가져 오는 것을 체크하는 정도만 생각했었다. 떠나기 전날 금요일.. 일을 마무리하고 자리에 누웠다. 주류가 아닌 비주류의 입장으로, 그리고 나와 전혀 상관없는 의료계 봉사를 과연 잘 할 수 있을까? 스마 부회장이 말하던 염려가 현실로 닥쳐오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하지만,, 뭔가 답을 내기도 전에 스르륵 잠이 들었다.

 

공항에서의 만남

 

무엇인가 첫 만남은 항상 이렇게 설레이나 보다. 나도 10일 동안 함께 할 식구들을 만나는 시간이 설레였다. 3시쯤 되어서 공항에 도착했다는 카톡이 떴다. 와….. 숨을 크게 한 번 들이쉬고 모임 장소로 나아갔다.  D앞에 모여 있는 사람들이 우리 일행인듯 했다. 머리 때문에?ㅋㅋ (죄송합니다 선생님) 나이가 많게 보이시는 하지만 피부는 20대^^보다 더 좋아 보이시는 한 분과,  꼽슬이고 어리신 분이 이리 저리 지시를 하고 계셨다. 학생들만 가는 것이 아니였나???라는 생각을 하며 그 분을 유심히 보았다. 이 분들이 책임자이시구나.. 인사를 드리고 싶었지만….하지만,,,, 도통 누구에게 인사를 해야 할지 알 수 가 없었다. 모두들 카톡으로 이야기를 나눈 친구들인데, 그 때 머리가 꼽슬인 친구( 윤석ㅋㅋ)가 다행히도 인사를 해 주었다. 와… 그래 반가워 조용하고 최대한 조신하게 인사를 했다. ㅋㅋ 가만히 서 있으니 뭔가 도회적이고 세련된  한 학생이 와서 자연이 누나이시죠.. 라며 모기 방지용 팔찌를 건네주었다. 그 친구가 그 땐 인천공항이여서 그렇게 보였다..^^  펼쳐진 짐들에 눈길을 주었다. 아니 어쩜 이렇게 짐이 많은지…. 그래서 자신의 짐은 한개만 가져오라고 한거구나… 그 때 까지도 나는 내가 학생때 다니던 봉사대에 그 범위가 한정되어 있었다. 앞으로 펼쳐질 스펙타클한 5일의 활동에 대해서 무지했다. 아니 상상조차 할 수 가 없었다… 

 

  그 짐들 중 까만 가죽 케이스에 담인 기타를 보았다… 기타…누군가 기타를 잘 치는 사람이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며 누구의 기타일지 주시하였다. 갑자기 구원이라고 소개한 구김이 없는 미소를 가진 친구가 다정하게 자연이 언니시죠라고 인사를 건네주었다. 얼마나 감사하던지….. 그리고 많은 친구들과 인사를 하고 통 성명을 하였다. 그렇게 하며 자연스럽게 일행들과 섞이게 되고 비행기에 탑승하고 그렇게 라오스로 향하였다.

 

10일동안 과연 얼마나  많은 것이 바뀔  수 있을까? 라오스로 향하는 비행기 안에서 2년전이 떠 올랐다. 3개월 동안 혼자 다니던 여행에 재미를 못 느낀 나는 돌아오는 비행기에서 절대로 혼자가는 여행을 다신 가지 않겠다는 다짐을 했었더란다. 30여명이 넘는 그리고 내가 아는 사람은 3명밖에 없는 여행. 그리고 20대가 주류인 이 그룹에 내가 잘 적응 할 수 있을지는 그 때까지는 물음표였다..

그렇게 내 인생의 7번째 봉사대가 시작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