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사대 후기

잘좀 써보려고 했는데 잘 안되어서 그냥 올립니다.

매일같이 거르지 않고 내리던 비가 오늘은 달이 하늘 높이 걸릴 때까지도 내리지 않았다. 봉사 후의 꿀맛 같은 식사를 마친 동우는 밤길을 걸어 숙소로 돌아가고 있었다.

올해 초의 겨울수련회를 통해 이번 방글라데시 해외 봉사대에 대해 알게 되었다. 봉사대에 참가한 경험이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처음 경험하는 해외 의료봉사는 내 가슴을 기대감으로 채우기에 충분했다. 의대 새내기로서 정신없이 보냈던 1학기와 봉사대 준비를 조금이나마 도울 수 있어서 행복했던 여름방학을 보낸 뒤에 인천공항에서 비행기에 오른 내 마음은 방글라데시와 그곳에서 만날 사람들, 그리고 그곳에서의 의료봉사활동 등에 대한 기대로 잔뜩 부풀어 있었다.

호수 근처를 지나는데 뒤에서 함께 걷고 있던 형들이 뭔가를 발견했다. 지난 며칠 동안 하루 여섯 번씩 같은 길을 오가면서 보아온 풀과 나무들로 이루어진 익숙한 풍경 틈으로 뭔가 새로운 것이 동우의 눈에 띄었다. 노래로만 듣던 개똥벌레(반딧불)였다.

방콕을 경유하는 긴 비행 끝에 도착한 방글라데시에서 맞닥뜨린 덥고 습한 날씨는 불쾌했지만 예상했던 것보다는 나은 편이어서 그럭저럭 견딜만했다. 공항에서 버스로 출발하여 방글라데시 삼육대학교에 도착한 나는, 비를 맞으면서도 현수막을 들고 우리 봉사대원들을 맞아주던 방글라데시 사람들의 환영에 감동받았다.

한국에서는 그림자조차 구경 못했던 반딧불을 이곳에서 처음으로 만나니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았다. 옛날 진나라의 차윤이란 사람이 수십 마리의 반딧불을 주머니에 담아 그 빛으로 밤을 새우며 책을 읽어 마침내 눈이 나빠졌다는 얘기를 떠올린 동우는 자기도 반딧불을 잡아보겠다고 마음먹었다. 혹시라도 반딧불이 다칠까봐 두 손으로 조심스레 감싸 쥐었는데 반딧불은 달아나지도 않고 쉽게 손에 들어왔다.

고맙게도 우리들의 짐을 방글라데시 인들이 숙소까지 날라다 주었다. 남자 숙소는 지어진 지 얼마 되지 않아서 벽에서는 페인트가 묻어나오고, 물이 깨끗지 못한데 그조차도 수압이 약해서 잘 나오지 않고, 침대 시트는 축축하고, 콘센트는 플러그를 꽂을 수 없을 만큼 헐렁하고, 창문에는 커튼조차 달려 있지 않은 엉성한 곳이어서 방글라데시에 대한 나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도착한 다음 날에는 우리들이 봉사할 장소인 대학 도서관 2층을 찾아가서 준비하는 시간을 가졌다. 왠지 모를 포근함과 아늑함이 느껴졌다.

소중한 것을 품은 듯이 살살, 그러나 반딧불이 도망가지 못하도록 빈틈없이 손으로 감싸 쥐었다. 가끔씩 반딧불을 구경하기 위해 손을 살짝 벌리면 그 틈으로 반딧불 빛이 은은하게 새어나오고, 그것을 바라보는 동우의 얼굴에는 흐뭇한 미소가 번졌다.

5일 동안의 봉사 기간 동안에 물리치료, 접수, 건강교육, 약국, 물리치료/약국을 차례로 맡아서 일했다. 전날에 30분 동안 배우고서 투입되었던 물리치료, 수많은 사람들의 혈압을 재다 보니 나중에는 가만히 있어도 사람들의 심장이 뛰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던 접수, indigestion과 deteriorate의 발음이 잘 안 되어서 당황스러웠던 건강교육, 막자가 없어서 유리구슬로 가루약을 만들었던 약국 등등 모두 나름대로 즐겁고 보람 있는 시간이었다. 시간적 여유가 좀 있을 때에는 틈틈이 접수를 도왔는데 나이에 비해 훨씬 늙어 보이는 여성들, 청각을 잃은 사람들, 어린 나이에 시력을 잃은 아이들 등 수많은 사람들을 접하게 되었다. 겪어보지 않으면 모를 그들의 고통에 비해 내가 육적·영적으로 해 줄 수 있는 일이 너무 작게 느껴져서 마음 아팠다. 하지만 나의 작은 도움일지라도 그것을 필요로 하고 고맙게 받아들이는 많은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로부터 나의 존재의 이유를 찾을 수 있었다.

그러던 중에 반딧불이 손 밖으로 빠져나왔다. 동우는 반딧불과의 만남이 이렇게 끝나버릴까봐 가슴 졸였지만 반딧불도 사람의 손등이 신기하게 느껴진 듯 날아가지 않았다.

삼육대학교 안에서 먹고 자고 봉사했던 까닭에 방글라데시 사람들의 실제 생활 모습을 듣고 볼 시간을 갖지 못했다가 마지막 봉사활동을 마친 오후에 대학 밖을 구경할 기회를 가져서 반가웠다. 방글라데시 사람들이 생활하는 모습은 신기했고 한편으로는 불쌍했다. 그들의 열악한 주거환경을 보면서 내가 묵었던 숙소를 돌이켜보니 수세식 화장실이 갖추어져 있고, 넓은 방이 두 개나 되고, 대형 선풍기도 갖추어져 있는 좋은 집이라고 생각되었다. 그러다가 문득 깨달았다. 방글라데시의 봉사대에서 나를 힘들게 했던 것은 덥고 습한 날씨도, 나의 부족한 시간과 능력도, 의사소통이 어려웠던 것도 아니라 이질감이었다는 것이었다. ‘우리’가 아니라 ‘그들’과 ‘나’로 분리되는 느낌. 그들의 모습을 불쌍하게 여기면 여길수록 나는 그들에게 가까워지지 못하면서, 나는 저들보다 행복하다고, 나는 도움을 주는 존재이고 저들은 도움을 받아야 하는 존재라고 말해온 내면의 목소리를 발견했다. 그들에 대해 연민과 동정을 품었지만 진정한 사랑에 이르지 못했다는 점이 이번 봉사대에서 가장 아쉬웠던 점이었다.

그렇게 반딧불을 손에 쥔 채 얼마간을 걸어서 숙소에 도착한 동우는 반딧불을 놓아주었다. 잠시 방에 들어갔다가 나온 사이에 반딧불은 어디론가 날아가 버렸다. 한 줄기 기억만을 남긴 채.

마지막 봉사를 마친 다음 날에 출국을 위해 다카 공항으로 떠났다. 치료를 받지 못한 사람들과 추가적인 치료가 필요한 환자들을 등지고 떠나기에는 미련과 아쉬움이 남았다. 또한 봉사 기간 끝까지 방글라데시 사람들과의 이질감을 극복하지 못하고 떠난다는 것도 아쉬웠다. 하지만 그 덕분에 오히려 나에게는 다음 봉사대에 참가해야 할 이유, 해결해야 할 과제가 생긴 셈이다.

봉사대 후기”에 대한 10개의 생각

  1. ㅎ ㅕㅣ ㅈ ㅣ ㄴ

    동우가 이렇게 감성이 풍부한 줄 몰랐어^^ 특히 ‘동우는 반딧불과의 만남이 이렇게 끝나버릴까봐 가슴 졸였지만’ 이라는 부분이 맘에 드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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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ㅎ ㅕㅣ ㅈ ㅣ ㄴ

    반딧불 빛이 은은하게 새어나오는 것을 보면서 흐뭇해하는 동우의 미소가 손에 잡힐 듯 가깝게 다가오는걸~ ^^ 2학기도 하나님과 동행하는 시간들 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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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조현정

    근데… 내가 후기를 넘 무겁게 시작했나봐^^;; 대충 생각나는대로 막 써서 올리는 가볍고 간단한 후기도 좋은데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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