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기 3 <초코송이 동산, 쒠꽝>

프롤로그

벌써 한달이 되어간다. 모두들 일상으로 완벽 복귀했나요?

모두들 화이팅 하고 기적이 일상이 되는 삶을 살길!!

 

<쒠꽝에 도착>

으악!! 나는 낮은 목소리로 소리를 질렀다. 와…. 옆에 앉아 있는 총무, 다형이가 참 대~~단해 보였다. 이런 상황에서도 잠을 이렇게 편안하게 잘 수 있다니… 쒠꽝으로 가는 국내선 비행기는 아주 요동을 치고 있었다. 하지만 다행히도 우리가 탄 비행기는 유유히 창 밖으로 보이는 울창한 숲과, 높은 산들을 굽이 굽이 지나쳐 쒠꽝 비행장에 안전히 착륙했다. 휴우…..

 

밖으로 펼쳐진 봉사지의 첫 인상은 시원한 수목원에 들어온듯 했다. 흐린 구름을 차양으로 하여 시원이 부는 바람은 거칠것이 없었다. 우리의 교통수단이 된 소를 싣는 트럭에 모두 올라탔다. 바람을 맞으며 우리가 머무를 곳을 염탐하기에 정신이 팔렸다. 풀위에 자유롭게 있지만 마른 소들, 자기 집인양 느그적 느그적 길위를 걸어가는 가축들,,, 종종 보이는 주민들과 초코송이를 듬성 듬성 박아 놓은 듯한 구릉들을 지나쳐 우리는 1시간 쯤 떨어져 있는 봉사지로 향하였다.

 

비행기를 타기전 나는 라오스말을 하실 수 있다는 한국인 의사선생님이 우리와 함께 있다는 사실을 알고 완전, 대박 놀랬다. 어떻게 라오말을 할 수 있는 거지? 저렇게 지렁이가 지나가다 똥이라도 찔끔 싼 것 같은 글씨들을 어떤 수로 읽고 말을 할 수 있다는 것인지…. 언어에 관심이 있는 나로서 호기심이 급 발동하여 선생님께 어떤 계기가 있었는지 여쭤 보았다. 선생님은 라오스에서 코이카의 활동을 하시면서 라오말을 배우신것이라며 친절히 나의 질문에 대답해 주셨다. 이 때 나는 이미 이 선생님이 대단하신 분인것을 직감적으로 알 수 있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박병원 선생님의 좋은 영향력으로 인하여 지중해성 빈혈에 대한 치료를 할 수 있는 인프라를 구축하고 , 라오스 사람들을 위해 여러가지 좋은 활동을 하신 이야기를 전해 듣고 선생님의 따뜻한 마음에 많은 감동을 받았다.  잠깐 잊어버리기 전에 선생님께 배웠던 라오말을 몇자 적자면… 라오말은 부정문이 ‘버’이다 그래서 나는 않 아파는 ‘커이  버 쨉’이라고 했다. 하지만 질문하는 문장도 ‘버’가 들어가는데 문장 마지막에 쓰는것이라 했다. 따라서 너 아프니 ‘짜오 쨉 버’ 근데 우리는 버쨉, 쨉버 이렇게 두 단어로 모든 대화를 했다는.ㅋㅋㅋ 

 

숙소에 도착하니 이곳 현지 라오공무원들이 청소를 해주시고 계셨다. 숙소는 여러 후기를 통해 소개가 되었으니 패스.. 나는 현정이와 유미와 함께 방을 쓰게 되었다. 의사선생님들!! ㅋㅋ 나는 깜짝 놀랐다. 마냥 학생처럼 옛되어 보이는 두 아가씨가 의사 선생님이라니.. 그것도 이 스마 봉사대를 학생때부터 꾸준히 참석해온 분들이시다는 것을 알고서 스마라는 단체에 굉장한 애착을 가지고 계시는 분들임을 알 수 있었다.

 

숙소를 떠나 우리가 5일동안 활동할 병원으로 향하였다. 이미 라오 현지분들이 나오셔서 우리를 반겨주시고

현지에서 나오신 오이사님도 함께 계셨다. 짧은 소개를 마치고 각자의 자리로 돌아가 자신이 할 일을 점검하는 시간이 되자, 나는 초등학교에 처음온 1학년 학생인냥 무엇을 해야 할지 참 남감하였다. 치과를 가보잖니 모르는 기계 투성이고, 약국을 가보자니, 약사님이 누구인지도 모르고 해서 학교 후배인 강하라 소아과 선생님의 방에 들어갔다. 소와과… 하라선생님은 풍선으로 무엇인가를 만들고 계셨다. 강아지……. 순간 잔 미소가 얼굴에 번졌다. 아이들을 위한 풍선 강아지라니… 어쩜 이런 생각을 했을까? 만약 내가 라오 어린이라면 하라 선생님의 진찰실에 매일 오고 싶어질 것 같았다. 하얀 강아지, 보라 강아지, 그리고 연두 강아지를 만들었다. 함께 했던 예은이는 디자인을 전공한 학생이였던것, 그래서 였는지 창의적인 꽃과 다양한 소품을 풍선으로 만들어 주고, 다은이는 센스 만점으로 우리가 만든 것들을 정돈되게 그러나 매력적이게 배열해 주었다. 아기자기하고, 정성스레이 꾸며진 방을 보며 이곳에 올 아이들이 행복하기를 마음속으로 기도했다.

 

저녁이 되자 우리는 숙소에 모여 예배를 드렸다. 내가 유심히 보아 두었던 기타는 윤석이의 손에 들려져 있었다.

내가 처음 불러보는 찬미들….. 하지만 좋았다. 마음껏 찬미 부르고, 마음껏 기도하고, 마음껏 말씀볼 수 있도록 우리는 모든 걱정과, 눈에 보이지 않는 와이파이의 속박으로 부터 자유했기 때문이다. 찬미가 시작되자 나는 그때까지  마음속에 있던  불안감과 약간의 걱정이 찬미가락과 함께 희석되는 것을 느꼈다. 이런 아름다운 마음을 가지고 찬미하는 사람들과 함께라면 두려울 것이 없을 것 같은 확신이 들었기 때문이였다.

 

지금 이 글을 쓰면서도 한참 멍하게 그때의 그 감격을 되돌아 본다. 유미가 적었던것 처럼 그리고 다른 사람들이

적었던 것처럼 봉사지의 첫 날 저녁예배는 우리에게 5일동안 하나님이 구름기둥과 불기둥으로 우리와 함께 하실 것을 직접 느끼게 해 주었다. 우리의 마음은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을 더 잘 알 수 있다. 누가 나를 미워하는 것 아니면 누가 나를 좋아하는것.. 심지어 가끔은 상대방의 마음을 읽을 수 도 있다. 이심전심이 이를 표현하기 위해 있는 단어 아닌가? 우리는 그랬다. 처음 만난 사람들, 전공이 다르고 배경이 다르고 연령대가 다른 사람들, 심지어 언어가 통하지 않는 사람들… 하지만 우리는 하나님의 성령이 우리의 마음에 역사하시고 우리가 한 마음을 가지고, 하나님 나라의 사명을  위해 최선을 다해 협력 할 수 있음을 말하지 않지만 마음속 깊이, 뜨겁게 느끼고 있었다.

 

진지한 대화로 소그룹이 끝나고 자리에 돌아왔다. 내일 부터 시작되는 본격적인 봉사 일정을 위해 나는 아침 반찬을 확인하고 몇몇의 식구들에게 아침 차리는 것을 도와달라고 부탁하였다. 천명선교사를 다녀온지 10년 만에 다시 자보는 딱딱한  나무 침대와 침낭이 정겨웠다.  휘양찬란한 라스베가스의 푹신한 침대와 깨끗한 시트 보다 나는 첫 날 밤 침낭안에서 훨씬 편안하고 곤히 잠이 들었다. 그렇게 하나님의 보호하시는 날개 밑에 우리 모두가 고요히 잠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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